배미경(더킹핀 대표이사)

 

배미경(더킹핀 대표이사)
배미경(더킹핀 대표이사)

올해 첫 출장지로 미국의 스포츠 레저관광도시로 유명한 뉴욕주 레이크플래시드에 다녀왔다. 2023 동계 세계대학 경기대회 개막 일정에 맞춘 4박 5일의 짧은 여정이었다. 현관문을 나서 레이크플래시드에 도착하기까지 28시간이 걸렸다. 말 그대로 장도(長途)였다. 인천공항에서 뉴욕까지 16시간, 미국의 국내선 비행을 위해 라과디아 공항으로 이동, 알바니 공항까지 또 1시간, 그리고 자동차로 2시간 남짓 달려서 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창 너머로 펼쳐진 미러호수와 웅장한 애디론댁(Adirondack)산맥이 만들어낸 이국적인 설경을 바라보니, 지옥 같았던 장거리 이동의 피로감이 순식간에 날아갈 정도로 아름다웠다.

레이크플래시드는 1932년과 1980년 두 차례의 동계올림픽을 치르면서 세계적인 겨울 스포츠 왕국이 되었고, 이후 대회 유산관리와 운영을 통해 4계절 아름다운 자연풍광과 레저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스포츠 관광도시의 입지를 굳혔다. 미국과 소련 간의 이념대립이 극에 달했던 1980년 동계올림픽 당시, 허브 브록스 감독이 이끈 미국의 남자 아이스하키팀이 세계 최강 소련을 꺾고 극적으로 금메달을 거머쥔 ‘승리의 기적’ 스토리도 유명하다. 브록스 감독과 아이스하키팀의 7개월간의 올림픽 출전 과정을 그린 영화 ‘미라클’의 현장이 주는 몰입감도 느낄 수 있었다. 뉴욕시에서 북동쪽으로 480㎞ 떨어진 깡촌에 불과했던 이 도시가 2차례의 메가 이벤트로 개벽했으니 레이크플래시드 자체가 기적의 현장인 셈이다.

이곳의 정주 인구는 2천638명에 불과하다. 주민들은 관광을 통해 먹고산다. 한해 방문자 수는 100만 명에 육박한다. 정주 인구 대비 방문인구가 400배나 많은 셈이다. 1980년 올림픽 이후 유산관리 차원에서 설립한 ‘올림픽 지역 개발청’에서 4계절 즐길 수 있는 크로스오버형의 관광콘텐츠를 마련해 방문자를 늘려왔다. 그동안 500회 이상의 국내외 스포츠 이벤트와 경기, 음악 페스티벌과 콘서트, 국제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레저, 스포츠, 관광을 즐기기 위해서 이곳을 찾는 방문자들로부터 창출되는 경제의 규모는 실로 대단하다. 올림픽 지역 개발청(Olympic Regional Development Authority)의 2019~2020년도 재정 보고서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창출되는 연간 사업매출액은 3천460억 원, 운영지출은 620억 원으로 지출 대비 수입이 5배를 넘는다. 연간 3천명 이상의 직·간접 일자리가 창출되니, 이 도시를 움직이는 힘은 명실공히 방문자다.

요즘 지방소멸의 해법으로 방문자 경제 활성화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정주 인구 1명 감소에 따른 소비감소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관광객 41명이 필요하다고 한다. 잘 만들어진 지역관광생태계가 쇠퇴한 지역을 살리고 나아가 국가의 자산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 관광산업의 전체 매출 규모는 10조5천억 원인데, 이 중 지역관광사업체의 매출이 1조 원 이상을 달성하는 테라 클럽은 서울(3조1천억), 강원(1조8천억), 제주(1조1천억), 경기(1조 원) 등 4곳뿐이다. 광주는 606억 원 수준으로 인구 규모가 유사한 대전(1천371억 원)의 절반 수준이고, 인구가 적은 울산(670억 원)보다 낮은 실정이다.

광주는 숙박, 쇼핑 등 기본 인프라의 확충, 킬러 콘텐츠의 개발, 관광기업육성과 진흥 등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지역산업의 관점에서 관광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무장하고, 그랜드 비전을 설정하여 과감한 투자와 발상의 전환이 이뤄진다면 광주가 테라 관광 시대를 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인구 3천 명도 안 되는 미국 산골의 작은 마을에서도 가능한 일 아닌가. 문제는 인식이다. 스포츠와 관광, 문화와 관광, 지역산업과 관광 등 관광은 다른 영역과의 크로스오버와 무한 변형이 가능하다. 오히려 관광은 크로스오버를 통해서 시너지가 커지는 영역이다. 패기 넘치고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융복합 관광스타트업이 창업, 성장할 수 있는 기반부터 마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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