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룡 전 (사)한국감사협회 회장

 

문태룡 전 한국감사협회 회장

‘민주주의의 정원’의 저자 에릭 리우&닉 하나우어(Eric Liu&Nick Hanauer)는 “정부란 우리가 각자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가 만들어낸 존재”라 불렀다. 현대사회는 시민 개개인이 해결하기 힘든 공통의 과제가 많다. 그것을 중앙정부, 혹은 지방정부나 그 산하 공공기관을 통해 과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것이다.

최근 광주광역시가 24개 공공기관을 20개로 통합하는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그 동안 광주시는 시장이 바뀔 때마다 민선4기부터 7기까지에 이르기까지 3개 이상씩 공공기관이 늘어 24개에 달한다. 공공기관의 축소 시도는 민선 시장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그동안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과 비효율, 채용 비리나 개인적 일탈 등에 대한 시민들의 냉소와 비판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광주시는 재정자립도가 전국 광역시 중에서 꼴찌인데도 인구수 대비 공공기관의 수는 가장 많다. 절대적 숫자로도 부산(25곳) 다음으로 많다. 시의 열악한 재정과 정원을 감안할 때 결코 여타 광역시보다 더 효율적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공공기관 구조조정안은 중앙부처와의 협의나 법률적 제약 등 사정은 있겠으나 혁신의 폭이 너무 작은 것은 아닌지 아쉬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장과 시장의 임기를 일치시키겠다는 강기정 시장의 의지는 높이 살 만하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전임 대통령이 임명한 기관장을 놓고 “나가라” “못 나간다” 등 갈등과 대립이 발생한다. 당연히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임기가 보장되는 기관장을 특별한 위법하자가 없는 한 몰아내기 힘들다. 그래서 때로는 온갖 치졸한 방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때문에 과거 국회에서 대통령과 공공기관장의 임기를 일치시키자는 토론과 여야의원 공동 입법발의도 된바 있다. 하지만 정치현안에 밀리고 정세가 변화함에 따라 본회의 상정은 고사하고 해당 상임위 합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회기가 끝나면 자동 폐기되기 일쑤다. 왜 그럴까?

바로 내로남불, 즉 여야의 입장에 따라 견해를 바꾸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집권세력이 들어서면 초기엔 불편하기 그지없다. 전임자가 임명해 놓고 간,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하지 않는 기관장들이 눈엣가시다. 임기초, ‘버티기와 밀어내기’의 갈등과 긴장의 연속으로 공공기관은 무력화되고 새로운 사업은 모두 보류된다. 그러다가 정권말기에 가면, 염치를 모르는 권력은 임기만료 며칠을 남겨두고도 3년 임기의 기관장을 임명(일명 알박기) 해버린다. 그러니 새정부는 해당 기관장이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3년 가까이 동거해야 한다. 새정부 입장에서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임기일치’의 혁신안을 추진한 강 시장의 드라이브에 많은 시민들의 관심이 매우 높아 보인다. 만약 이번 혁신안이 잘 안착된다면 지방자치단체 최초의 임기일치제도가 될 것이고, 앞으로 중앙정부 산하 공공기관장의 임기제도 혁신에도 기념비적인 이정표가 되리라 확신한다.

최근 초중고 학생들의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공무원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온다고 한다. 실제 신분 보장 등 직업의 안정성과 급여수준이 국민평균 소득보다 높으니 당연한 현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같은 혜택은 시민들에게 필수적인 공공재화와 서비스 제공에 대한 책임감을 전제로 한다. 일반인보다 더 높은 도덕성과 헌신성을 요구 받는 것이다.

리더는 앞장서는 사람이지 혼자가는 사람이 아니다. 당연히 공공기관 혁신의 1차주체는 해당조직의 구성원들이다. 스스로 시대흐름에 맞춰 함께 변화하지 않으면 해당기관은 물론이고 시민들의 삶과 그 도시는 퇴보하고, 글로컬(Glocal) 시대에 뒤처지게 될 것이다. 시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공공기관으로 거듭나는 광주시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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