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차 급여 초과수당 포함해 300만원도 안 돼”
“시커먼 카본 뒤집어 쓰는데 방진복 일주일 사용”
“원청 노동자 대비 급여 40% 수준에 불과해”

 

여수국가산단 내 비를라카본코리아 사내하청인 강일산업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는 모습.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비를라카본코리아 사내하청지회 제공.
여수국가산단 내 비를라카본코리아 사내하청인 강일산업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는 모습.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비를라카본코리아 사내하청지회 제공.
노동조건 개선과 임금인상을 촉구하는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비를라카본코리아 사내하청지회.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비를라카본코리아 사내하청지회 제공.
노동조건 개선과 임금인상을 촉구하는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비를라카본코리아 사내하청지회.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비를라카본코리아 사내하청지회 제공.

‘열심히 일한 사람이 정당한 대가를 가져가는 것’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다. 그런데 완전히 틀렸다. 노동자도 계급이 있다. 먹이사슬의 최하층 노동자들은 여전히 착취를 당한다.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내 비를라카본코리아 사내하청인 강일산업 노동자들이 최근 총파업에 들어갔다.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과 임금 인상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다.

이 회사는 자동차 타이어의 주원료가 되는 카본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인도자본인 비를라가 운영하는 다국적기업이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새까만 카본 분진 속에서 일하는데 방진복과 장갑을 빨아서 재사용하고 월 100시간 이상 초과근무에 시달리는 등의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은 원청 노동자 대비 30~40%의 급여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남도일보는 5일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비를라카본코리아 사내하청지회 강일산업 노동자 A씨의 지난해 11월 급여명세서를 확보했다.
 

비를라카본코리아 사내하청 9년차 노동자의 지난해 11월 급여명세서.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비를라카본코리아 사내하청지회 제공.
비를라카본코리아 사내하청 9년차 노동자의 지난해 11월 급여명세서.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비를라카본코리아 사내하청지회 제공.

올해 9년차 노동자인 A씨는 지원조 성격의 ‘스페셜’부서에 근무하고 있다. 그는 제품 불량과 비품이 있을 때 보정작업과 야적관리 등을 맡는 등 특별히 정해진 업무보다는 다른 부서를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A씨의 지난해 11월 시급은 9천160원이다. 이는 지난해 정부가 지정한 최저임금과 같은 금액이다. 그는 평일 8시간 이후 초과 근무한 특근 41.5, 특연장 1.5, 잔업 22시간,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근무한 심야 9시간을 일했다. A씨는 야간조가 아닌 1근 근무조인데도 밤샘 근무가 일쑤였다.

그는 그렇게 한 달 꼬박 일하고 각종 세금을 내면 280만원 남짓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지난해 11월 그의 급여지급 명세서에 찍힌 실수령액은 282만1천549원. 그것도 정해진 시간에 교대가 보장되지 않고, 그날그날 회사가 나오라는 대로 나가서 근무한 대가다. 말 그대로 스페셜한 노동자다.

A씨가 근무하는 강일산업은 비를라카본코리아 내 포장과 출하 등 공정 부문 사내하청을 맡고 있다. 모두 72명의 노동자가 근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 측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통상임금은 235만원에 불과하고, 초과 수당을 포함하면 평균 300만원~330만원 정도라고 밝혔다. 연봉으로 단순 환산하면 4천만원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장시간 노동 문제뿐만이 아니고 노동환경 역시 열악하다.

이들은 매일 카본을 출하, 포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미세한 카본 분진에 그대로 노출돼 온몸이 까맣게 되고, 직간접적으로 흡입한다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며칠만 일해도 하얀 신발이 시커멓게 변하고, 입안, 콧속, 귓구멍, 눈 주변 등 가리지 않는 분진흡입은 언제든 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노조 측은 “까만 분진을 뒤집어쓰고 흡입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조건임에도 사측은 일회용 방진복을 일주일동안 입게 해 방진복을 빨아서 다시 입고, 일회용 장갑도 빨아서 재사용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이렇게 열악한 실정인데도 급여는 원청 노동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노조 측은 “지난 2021년 기준 구인 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 자료에 따르면 원청 노동자의 평균 연봉은 8천 300만원으로 공개됐다”며 “우리는 더욱 힘든 일을 하는데도 40%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원청 노동자는 공장 설비 가동 오퍼레이터, 품질분석, 출하 사무 등 상대적으로 편한 업무를 하면서 두 배 이상 급여를 받지만, 사내 하청 노동자가 없으면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데도 자신들은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노조는 “여수국가산단의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대비 30~40%의 임금을 받으면서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면서“우리회사 급여가 상대적으로 더 낮은 이유는 2012년부터 매년 최저시급이 결정되면 상여금을 기본급에 녹여 인상효과를 막아온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청의 주문량에 따라 12시간 맞교대가 되었다가 16시간 계속근무를 하는 등 원청의 입맛 따라 근무를 하다 보니 약속도 가족과의 단란한 시간은 그림에 떡”이라며 “한 달 100시간 이상의 초과근무가 기본이 되고 있으며 과로사로 죽지 않을까 걱정될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이들은 노동조합을 설립한 뒤 하청업체와 7개월 동안 26차례에 걸쳐 단체교섭을 진행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해 쟁의행위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노조는 사측에 최저 시급에서 25%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인상폭이 높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럴 경우 기본급이 시간 당 1천500원~2천원 정도 인상된다. 한 달로 계산하면 1인당 50만원 전후 인상하는 셈이다.

김창우 비를라카본코리아 사내하청지회 사무장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21세기인데 비를라카본코리아의 근로조건은 19세기에 머물러 있다”면서 “현장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카본공장의 특성에 맞게 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그래야 신입사원들이 들어와 살인적인 초과 근무를 줄이고, 정상적인 근무형태를 만들 수 있다”고 호소했다.

동부취재본부/장봉현 기자 coolman@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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