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어느 날 순창 사또는 분영과 함께 앉아 술을 나누면서 궁금하던 것을 말했다.

“내가 듣기에는 기생이라 하여도 특히 정이 깊은 사내가 따로 있어서 그 사람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한다고 하던데 혹여 분영이 너도 그런 사내가 있으냐?”

그 말을 들은 분영은 잠시 입을 열지 못하고 사또의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리는 것이었다.

“괜찮다!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니 숨기지 말고 말해보라?”

사또가 분영에게 말했다.

“예! 사또 나리, 저 역시 평생 가슴 속에서 사모(思慕)하여 잊지 못하는 분이 있습니다.”

“허허! 그래, 과연 그가 누구란 말이더냐?”

사또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분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분영은 술잔을 들어 잠시 입술을 적시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분은 다름이 아니라 안국동(安國洞)에 사시던 정읍현감(井邑縣監)을 지낸 권공(權公)입니다”

“으음! 정읍현감 권공이라! 그래, 그렇다면 어찌하여 그리 정(情)이 깊었단 말이더냐?”

사또가 말을 하며 술잔을 들었다. 분영도 술잔을 들었다. 가슴에 맺힌 지나간 사랑 이야기를 그냥 듣기에는 좀 머쓱한 것인지라 술 한잔으로 우선 마음을 달래자는 것이었으리라! 분영이 술잔을 비우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권공께서는 키가 크고 야윈 학이나 목이 긴 고니처럼 생겼었습니다만 인품이 고상하였고 술을 좋아하였지만 아무리 술을 마셔도 절대로 정신을 잃지는 않았었지요. 풍채(風采)나 말투는 보통사람과 똑같았지요. 잠자리에 들면 다른 분과 다를 것이 없었으나 애정이 두텁고 정이 돈독하기가 마치 부레풀과 칠 같았지요. 하루만 보지 않아도 그리운 생각이 간절하여서 일시도 떨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을 같이 지내려고 결심했지만 죽고 사는 생사의 문제는 운명이었으므로 만사가 허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분영은 권공과의 첫 만남과 사랑에 대하여 숨김없이 차분히 말을 하다가는 울컥 목이 메는지 술잔을 들어 입술을 적시었다.

“으음! 부레풀과 칠 같았다. 정말 정이 깊었구나!”

사또가 술잔을 들며 말했다. 분영이 말을 이었다.

“몸은 둘이었으나 실상은 마치 부레풀을 먹여 붙인 나무처럼, 나무에 칠을 먹인 것처럼 한 몸과 같았었지요.”

분영은 권공이 죽어 이별한 뒤로는 무슨 일에도 의욕을 잃어버렸고 또 관리의 술자리에 불려 나가 술을 마시고 춤이나 노래를 불러도 마지못해 그렇게 하였을 뿐, 오매불망(寤寐不忘) 일편단심(一片丹心) 오직 권공의 얼굴만이 눈에 선하여 한숨과 눈물만 날 뿐이었던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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