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기업을 키워야 지역이 산다”
수도권 대기업 마케팅 공세에 경영난 갈수록 심화
보해양조 등 지역기업들 매출 악화로 고용여력↓
광주·전남 청년들, 年 1만여명 수도권으로 떠나
“외부 기업 유치에 앞서 기존 기업 지원책 절실”

 

보해양조 장성공장 전경사진. 보해는 지역기업으로서 일자리 창출과 원부자재 구입, 세금 납부 등 다양한 역할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헌신하고 있다. /보해양조 제공

근현대 격동의 세월 동안 호남인과 애환을 함께 하며 성장해 온 향토기업들이 흔들리고 있다. 과학문명 발달에 따른 생활상의 변화와 지속적인 경기불황, 대기업의 업계 진출 등의 여파로 심한 경영난을 겪으면서 존폐마저 위협 받는 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향토기업은 지역경제를 살리는 근간이다. 지역민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향토기업이 성장해야 지역 일자리 창출과 사회공헌활동으로 이어져 지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갈수록 향토기업에 대한 관심이 낮아지다 보니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다. 이제는 향토기업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향토기업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향토제품을 애용해야 한다. /편집자 주
 

보해장학회는 지난 1981년부터 현재까지 41년 동안 4천여명의 학생들에게 약 37억 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보해양조 제공

“광주에 일자리가 별로 없으니 지역에 머물고 싶어도 결국에는 떠나게 되는 거죠.”

지난 3월 수도권의 한 제조업체에 취직한 박모(27)씨는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선택한 이유가 일자리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매출액 2조원이 넘는 큰 기업에서 일하게 됐다는 주변의 축하에도 “타지생활에 대한 부담이 더 크게 다가온다”며 광주에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돌아오고 싶다고 했다.

일자리가 부족해서 떠나는 사례는 박씨 뿐만이 아니다.

호남지방통계청에 따르면 타지역에 취업해 고향을 떠난 청년(20~29살)이 2021년 한 해에만 광주에서 2천644명, 전남에서 9천256명 등 총 1만1천900명으로 집계됐다. 지역에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이다.

청년 구직자들이 선호하는 공기업을 보면 광주·전남의 열악한 일자리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난 2019년 매출 기준 한국 100대 기업의 본사를 살펴보면 광주·전남은 한국전력 단 한 곳으로, 고용효과가 높은 민간기업은 찾아볼 수 없다. 수도권이 84곳, 영남권 12곳, 충청권이 3곳이다.

일반 기업으로 범위를 넓혀도 일자리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지역기업들의 상당수가 매출악화에 따른 어려움을 겪고 있어 신규 채용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역과 상생하며 사회공헌 앞장

지역 기업들의 고민도 날로 깊어지고 있다. 지역기업의 붕괴가 단순히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지역기업들은 고용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원부자재 구입 및 유통, 세금 납부 등 지역경제의 유동성 공급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업체마다 나름대로 개별적인 지역공헌활동도 펼치고 있다.

보해양조의 경우 지난 2007년부터 담양 대나무축제, 함평 나비축제 등 지역을 대표하는 각종 축제를 잎새주 뒷면 라벨을 이용해서 홍보해왔다. 지역 향토기업으로서 광주·전남에서 열리는 다양한 축제를 전국에 알려 관광객을 유치하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시작했다. 현재까지 16년 동안 무상으로 후면라벨 제작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에서 보해양조 제품 판매량은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다.

보해장학회를 통한 장학사업도 지난 1981년 설립 이후 41년 동안 지속하고 있다. 보해양조가 선발한 보해장학생은 올해까지 총 3천897명에 달하며 이들에게 지급된 장학금 누적액만 37억 원에 육박한다.

▶‘막대한 자본력’ 대기업 공세에 고전

향토기업들은 지역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며 지난 수십년 동안 상생에 앞장서 왔다. 하지만 막대한 자본력으로 광고와 마케팅에 나서는 대기업들로 인해 순식간에 시장을 잠식당하는 것을 지켜보며 기업의 위기를 넘어 지역경제 전체의 소멸까지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자체에서도 향토기업의 위기가 단순히 일자리 감소를 넘어 지역소멸이라는 더 큰 문제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향토기업의 역할에 비해 지원이 부족했다는 데에 공감하며 적극 나서는 사례들도 나오고 있다.

경남도의회는 향토기업의 육성과 지원을 강화하는 조례 제정을 추진 중이다. 조례안을 제안한 박진현 의원은 지난 3월 고용창출 등 지역경제에 헌신해온 향토기업에 실질적인 지원이 전무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지역기업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다. 광주·전남 지자체와 정치권에서도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나윤 광주시의원은 “지난 몇 십년 동안 묵묵하게 고용창출과 지역경제를 위해 헌신해 온 향토기업의 어려움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이제는 향토기업 육성 및 지원 조례 등을 통해 경영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보해양조 관계자는 “지역민 사이에서 갈수록 애향심이 줄어드는 반면 막대한 예산으로 마케팅 비용을 쏟아붓는 대기업 제품에 대한 소비는 계속 늘고 있다”며 “지역민들께서 지역기업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동시에 지자체들 역시 외지 기업유치에 앞서 현재 우리 지역에 뿌리를 둔 기업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보해양조는 지역과 상생을 위한 다양한 공헌활동을 하는 것은 물론 소주와 복분자주, 매실주와 막걸리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해 소비자들로부터 사랑 받고 있다. /보해양조 제공

▶보해양조의 대표 제품은

보해양조는 1950년 창업자 고(故) 임광행 회장이 설립한 73년 전통의 주류전문회사로 국내 주류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대표 제품으로는 세계 3대 소금을 넣어 쓴맛을 잡고 풍미를 더한 ‘보해소주’, 최상급 복분자만을 사용해 맛이 깊고 진한 ‘보해 복분자주’, 해남 보해 매실농원에서 직접 생산한 청매실로 빚어 맛이 순하고 깨끗한 ‘매취순’, 저온살균 공법으로 신선한 맛을 오랫동안 균일하게 보관할 수 있는 ‘순희 막걸리’, 소다맛에 탄산을 더해 청량감과 달콤함이 특징인 ‘부라더 소다’ 등이 있다.
/김경태 기자 kkt@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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