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립항공우주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스푸트니크 1호 ’ 모형. /미공군 제공
미국 국립항공우주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스푸트니크 1호 ’ 모형. /미공군 제공

스푸트니크 모멘트(Sputnik Moment)와 문샷(Moon Shot)

1957년 10월 9일 미-소 냉전의 한가운데서 소련이 인류 최초로 쏘아 올린 인공위성 1호 ‘스푸트니크’를 TV 뉴스에서 접한 미국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과 최첨단 군사력을 과신하던 미국은 국가적인 위기감과 두려움에 빠졌다. 이후 나사(NASA)가 만들어졌고, 젊고 패기에 찬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2년 라이스대학의 젊은이들 앞에서 그 유명한 ‘문샷(Moon shot)’연설을 한다. ‘10년 이내에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당시만 해도 불가능해 보였던 그 담대한 선언은 미국의 상상력과 국가적 혁신 역량을 결집시켜 결국 8년여 만에 인류 최초로 인간을 달에 쏘아 올리는 데에 성공한다.

중국판 스푸트니크 모멘트(Sputnik Moment)

그로부터 70여년이 지나 이제 미-중 간 새로운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 이번에는 중국이 이 ‘스푸트니크 모멘트’를 맞고 있다. 2017년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중국 바둑황제인 커제를 완파했을 때 중국은 미국의 앞선 AI기술에 충격을 받았다. 그로부터 2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중국 정부는 야심 찬 AI 육성 전략을 발표하며 “2030년까지 세계 최고의 AI기술을 확보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간 중국의 AI기술과 생태계는 짧은 시간에 놀랄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예를 들면 AI 안면 인식기술은 세계 최고로, 중국 대도시 상점에서 결제창에 얼굴을 비추면 자동으로 결제가 되고 횡단보도 신호를 위반해 건너면 실시간으로 거리 전광판에 그 사람의 얼굴과 신상정보가 뜨는 정도가 됐다. 천문학적 자금 지원, 10억 인구의 거대한 빅데이터, 치열한 기업가 정신과 경쟁이 만들어낸 결과이지만 점차 강화되고 있는 대(對)중국 기술 통제로 서구의 첨단 기술 도입이 봉쇄되면서 큰 위기에 봉착, 급제동이 걸린 것이다.

미국의 대중 기술패권 전략 : 투 트랙 접근(Two Track approach)

오바마, 트럼프, 바이든의 3대 행정부를 거치면서 치열한 내부 논쟁과 진화를 거쳐 형성된 미국의 대중 기술패권의 기본 전략은 크게 ‘육성(promotion)’과 ‘보호(protection)’, 투 트랙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오바마 정부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미국은 중국이 2015년에 발표했던 ‘중국제조 2025’ 전략에 큰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10년 이내에 AI, 퀀텀컴퓨터 등 최첨단 기술의 선도국으로 올라서겠다는 목표로 집중적인 산업정책으로 치고 올라오는 중국에 대한 경고등이 여기저기서 켜졌다. 트럼프는 대중 강경책으로 선회하며 화웨이 5G 등에 기술 통제를 시작했고, 바이든은 초기에 에릭 슈밋 전 구글 CEO(최고경영자)를 의장으로 하는 AI국가안보위원회를 구성해 기술패권 경쟁에서 미국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민·관 합동의 전략을 집대성했다.

그 전략의 첫 번째는 적극적 산업정책을 통해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핵심 제조업을 미국 내에 ‘육성(promotion)’하고 정부 R&D(연구·개발)자금을 확대 투자해 혁신 역량을 높인다는 것이다. 백악관은 ‘반도체 법(CHIPS Act)’을 ‘아폴로 프로젝트’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핵무기 개발 ‘맨해튼 프로젝트’와 비교하면서 그 규모와 효과 면에서 역사적 규모를 훨씬 뛰어넘는다는 담대성을 강조한다. 백악관은 역사적으로 미국의 산업정책을 통해서 인터넷, NASA, 상업용 위성 등 혁신적 기술이 태동해온 것이라 설명한다. 자국 우선주의와 보조금 전쟁 우려에도 미국발 산업정책은 실제로 미국 제조업 붐을 예고하며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두 법안 발표 후 글로벌 기업들은 미국 시장의 엄청난 기회를 선점하기 위해 이미 2천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경쟁적으로 발표하고 있고, 바이든표 산업정책으로 인해 정부, 민간에서 투자되는 규모는 향후 10년간 약 3조5천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규모로 추산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의 첫 발걸음은 국내 산업정책으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공격적인 통상안보정책을 통해 중국의 기술굴기를 꺾으며 미국의 기술적 우위를 ‘보호(protection)’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해 9월에 밝힌 기술 독트린은 백악관 이너서클의 기본 인식을 잘 보여준다는 데에 의미가 크다. 즉 AI, 반도체, 바이오, 클린에너지 등의 신흥 기술은 근원적 기초 기반 기술 성격을 지녀 이 변곡점에서 초기 패권을 놓치게 되면 미래 산업은 물론이거니와 국가안보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것이므로 국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흥 기술의 특징 때문에 과거 미국의 정책이 중국과 최소 1~2세대 앞선 기술을 확보한다는 ‘비교우위 전략’에서 전환해 가능한 기술 격차를 최대한 확보한다는 ‘절대우위 전략’으로 전환했음을 명백하게 천명한다. 이러한 기본 전략하에 미 상무부는 지난해 10월 중국의 목을 죌 수 있는 첨단 반도체 등 초크포인트(choke point) 핵심 기술을 정밀 타격해 수출 통제를 획기적 수준으로 강화했다. 또한 자국의 핵심 기술이 유출되지 않도록 미국에 투자하는 인수·합병(M&A)에 대한 사전 투자스크리닝을 대폭 강화하는 한편 향후 미국 기업이 중국에 투자할 경우에도 정부가 사전에 투자스크리닝을 거쳐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전례 없는 규제안도 조만간 발표할 것으로 전망된다. 결론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에서 포문을 연 대중 ‘무역 전쟁’은 바이든 행정부에서 더욱 진화하며 정교해진 ‘기술패권 전쟁’으로 확대 강화되고 있다.
 

1962년 라이스대에서 ‘문샷(Moon shot)’ 연설을 하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NASA 제공
1962년 라이스대에서 ‘문샷(Moon shot)’ 연설을 하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NASA 제공

중국의 기술굴기 : 10년간 칼 한 자루를 간다

미국의 파상 공세로 핵심 기술에의 접근이 막히게 된 ‘중국판 스푸트니크 모멘트’는 기술굴기를 꿈꾸는 중국에 절체절명의 위기로 다가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중국은 핵심 기술을 서방에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깨달았고 ‘기술자립’ ‘기술독립’만이 살 길이라는 필사의 각오로 반도체, AI 등의 핵심 기술 자체 개발에 국가적 자원을 총동원하며 오히려 전례 없이 기술굴기를 촉진하고 있다.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가 우리의 핵심 기술 국산화를 위한 ‘소부장’ 정책으로 이어졌듯이 미국의 기술 통제가 중국판 ‘소부장’ 정책 추진의 방아쇠를 당긴 셈이다. 2021년 전인대에서 나온 “10년간 한 자루의 칼을 가는 정신으로 핵심 기술 연구에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리커창 총리의 선언에서 중국의 결기를 느낄 수 있다. 향후 중국의 대외 의존이 점차 낮아지고 국산화가 진전되며 그간 우리 대중 수출의 70% 이상을 부품소재가 차지했던 무역구조에도 구조적 변화가 올 것이다. 최근 대중 무역이 적자구조로 전환되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중국은 수천년 전 종이, 목판인쇄술, 나침반, 화약 등의 발명품을 인류에 안긴 혁신 DNA가 있다. 유럽의 박물관에 가보면 근대 유럽의 귀족들이 부와 특권의 상징으로 여겼던 중국산 도자기들을 특별하게 전시해 놓은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근대만 해도 유럽에서 중국산(Made in China)은 지금의 중국에서 샤넬, 루이비통이 차지하는 럭셔리의 상징이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런 역사와 DNA를 지닌 중국이 기술굴기의 목표를 달성하는 시점이 얼마나 단축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때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기술패권 경쟁 속 우리의 길

과거 ‘이 나라 없으면 공급이 안 되는’ 핵심 기술이나 초크포인트를 가진 국가 리스트에 우리나라는 빠져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반도체, 배터리 등과 같이 우리나라 없이는 미국, 중국, 그리고 전 세계 공급망에 큰 혼란이 생기는 핵심 기술과 제조능력을 우리나라도 갖게 됐다. 우리가 주요 글로벌 공급망에서 초크포인트를 확보하면서 레버리지가 생긴 것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 IMF에서 한국의 반도체산업 과잉생산능력을 없애도록 권고한 것을 따르지 않았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고 설파한 바 있다. 이런 여러 위기를 거쳐 오늘날의 반도체산업이 만들어졌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산업·기술동맹’에 방점이 실린 것은 환영할 일이다. 챗(Chat)GPT에서 보듯이 아직 미국 실리콘밸리의 혁신적인 돌파기술과 벤처생태계는 세계를 리드한다. 반도체는 미국에서 발명된 것이지만 현재 반도체 공급망에서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차지하는 이 모델을 계속 진화, 발전시켜야 한다. 지난해 여름 반도체 법과 IRA 두 법안이 발효된 이후 한국 기업들은 200억 달러 넘는 규모의 투자를 발표해 대만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대만은 반도체에 치우쳐 있다면 한국은 반도체, 전기자동차, 배터리, 태양열 등 다양한 핵심 산업의 공급망에서 불가결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으로 생긴 미국 내 공백을 우리가 발 빠르게 치고 들어간다면 미-중 사이에 끼어 있는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서 시장은 대체할 수 있지만 기술은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본 기고는 헤럴드경제와 제휴해 게재합니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