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정(광주 진남중학교 교장)

 

박주정 광주 진남중학교 교장

‘부르면 즉시 달려간다’는 의미의 위기학생 신속대응팀 ‘부르미’가 출범한 2015년 여름밤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비가 억수로 퍼붓는 새벽 부르미에 1번으로 착신된 내 휴대폰이 울렸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큰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네, 광주광역시교육청 민주인권생활지원과 박주정 과장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과장님, 00고등학교 교감입니다. 비가 이렇게 많이 퍼붓는데 우리 여고생 한 명이 담임선생님께 죽고 싶다는 문자를 남기고 나갔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부르미’1호 긴급출동이었다. 경찰과 공조하여 휴대폰 위치추적으로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경찰차가 먼저 와 있었다. 휴대폰의 위치만 1㎞ 반경 안에서 잡히고, 안개와 폭우 때문에 더 이상 수색이 어렵다고 했다.

나는 속이 타서 학생이 뛰어내렸으면 다리 밑에 있지 않을까,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직접 다리 밑으로 내려갔다가 장마철 바위에 잔뜩 낀 이끼에 미끄러져 물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아뿔싸, 장마로 불어난 물에 내가 휩쓸리는 낭패를 당했다. 나는 부끄러움도 잊고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악을 썼다. 구급차에서 밧줄을 내려주어 가까스로 다리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그런데 그 순간 다리 기둥에 붙어 있는 하얀 물체가 보였다. 그 여고생은 죽으려고 했지만, 갑자기 죽는 게 무섭고 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다리 교각을 오랜 시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구출한 다음 날, 여고생의 집을 방문했다. 슬레이트 지붕조차 반쯤 기운 집이었다. 비닐로 덮었으나 비가 새고 열악해서 폐가처럼 보였다. 가족 상황은 더욱 안타까웠다. 아버지는 알코올중독, 어머니는 중풍, 동생들 세 명은 초·중학생이었다. 그 여고생이 실질적 가장으로 아르바이트를 하여 끼니를 이어가고 있었다. 여고생 목숨을 살렸지만 참으로 난감했다. 여고생의 가정이 살아가려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교육청 단독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유관기관의 도움과 협조가 절실했다. 이런 경우를 너무 많이 경험했기에 부르미의 3대 과제를 제시하고 추진했던 것이다.

위기의 여고생에게 달려가서 구한 것이 첫 번째 과제이고, 끝까지 책임지고 모두 함께 돕는 두세 번째 실천 과제가 앞에 놓인 것이다. 협업으로 이 가정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역할 분담을 위한 관계기관 솔루션회의를 열었다.

가장 시급한 여고생의 심리치료와 상담은 교육청에서 맡기로 했다. 초·중학교 동생들의 학업을 돕기 위해서 대학생 멘토링을 활용했다. 학용품 및 체험학습비는 학교장이 책임지며, 부서진 집수리는 이 분야 전문 봉사단체에서 맡기로 했다. 또 집수리 기간에 아이들의 거처는 NGO 단체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생활비 마련을 위해 후원회를 만들기로 했고, 부모의 치료는 자치단체에서, 치료 후 직업알선은 내가 맡기로 했다.

협업의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이 여고생의 가정에 평온이 찾아온 것 못지않게 부르미의 성공적인 시스템 작용이 돋보였다. 집도 말끔하게 리모델링되었고, 6개월 후 여고생은 완치되어 학교로 복교했다. 그리고 1년 뒤 대기업에 입사하여 동생들을 돌보게 되었고, 부모들도 꾸준히 치료를 받고 있으며, 알코올중독이던 아버지는 직장을 구하여 이 가정의 삶이 차차 안정되었다. 여럿이 모이면 놀라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새삼 다시 배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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