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정(광주 진남중학교 교장)

 

박주정 광주 진남중학교 교장

1993년부터 2002년까지 광주 북구 용전동의 산자락에 공동학습장을 운영하면서 가장 즐거운 시간은 늦은 밤이다. 공부하다가 밤중에 학생들과 함께 닭죽을 쑤어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다.

넓은 농장에 수많은 닭을 키웠다. 닭이 몇 마리인 줄도 모를 정도였다. 달걀을 여기저기 낳는다. 풀숲에 가면 달걀이 무더기로 쌓여있기도 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달걀을 찾아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처음에는 날달걀을 먹는 모습을 보고 학생들이 원시인이라고 했다.

“야, 너희들도 한번 먹어봐. 먹고 보고 말해.” 학생들도 약간은 비릿하고, 나중에는 살짝 고소한 맛을 알아갔다. 점차 그들도 잘도 주워 먹었다.

그런데 문제는 닭을 잡는 일이었다.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닭 잡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목을 비틀어 죽이는 것이 너무 싫었다. 학생들도 기겁했다. 한번은 살아있는 닭털을 뽑았는데 닭이 도망가버렸다. 학생들과 나는 한밤중에 후레쉬를 비추면서 동네로 내려간 닭을 잡으러 다녔다. 마을 주민들이 이 광경을 보고 저 선생과 학생들은 ‘약간 머리가 이상한 사람들’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이나 선생이나 우리보다 더 어린애 같다고 했다.

닭을 잡아 찹쌀 닭죽을 먹으면서 우리들은 수많은 이야기를 했다. 밤하늘에 별을 보며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이며, 어떤 선생님 흉도 보면서 우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선생님과 제자가 아닌 친구처럼 도란도란 이야기를 했다. 가끔은 미래의 꿈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너무 덥거나 짜증 나고 재미가 없을 때에는 저 건너 한재골로 프라이드를 몰고 갔다. 두 번 왕복하면 모두 여름밤을 즐길 수 있었다. 한재골에는 큰 저수지가 있는데 그 밑에 웅덩이가 있었다. 수영을 못하게 되어있지만 우리는 밤에 가기 때문에 지키는 사람이 없었다. 남녀학생이 함께 들어가 수영도 하고 물싸움도 하고 놀았다.

한번은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발밑이 따뜻했다. “선생님 빨리 피하세요, 지금 우리가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어요.” 여학생이 오줌을 싼 것이다. 우리는 깔깔깔 웃으면서 오줌을 피해 물 밖으로 튀어 나왔다. 밤이 늦도록 도깨비 놀이, 귀신 놀이를 하면서 우리만의 여름밤을 만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항상 말했다. 선생님은 우리들보다 더 철이 없는 것 같다고.

그 철없던 시절이 세월이 갈수록 아련해지고 그립다. 지금은 중년을 훌쩍 지나버린 내사랑 제자들! 가끔 만나면 “선생님, 다시 그날로 돌아가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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