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정(광주 진남중학교 교장)

 

박주정 광주 진남중학교 교장

1993년부터 시작한 우리의 공동학습장은 해를 거듭하며 자리를 잡아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동학습장에서 함께 생활한 학생들은 당시 용어로 소위 ‘문제아’들이었다. 지금은 ‘학교 부적응 학생’이라고 한다. 그런데 ‘부적응’이라고 뭉뚱그려서 말하지만, 그 면면을 들여다보면 여러 유형의 아이들이 있다.

학교에 오지 않는 장기결석자, 학교에는 오지만 교사에게 대들고 수업을 방해하거나 무기력하게 앉아서 하루 종일 잠만 자는 학생, 흡연은 말할 것도 없고 술을 마시고 학교에 오는 학생 등 참 다양한 아이들이 있었다. 힘이 세고 깡이 있어서 시내에서 조직폭력배 생활을 하는 아이도 있었다.

요샛말로 하면 학교에서 제일가는 진상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고 대책 없는 아이들이 공동학습장에서 생활했다. 그러니 이 친구들을 먹이고, 재우고, 함께 살면서 공부하는 게 내 일의 끝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주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 나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늘 어려움이 닥쳤다. 애들이 천차만별이어서 나도 인간이니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를 때가 있었다. 아이들 속에 쌓인 많은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 폭력으로 드러났고, 대화마다 욕설이 흥건했다. 함께 사는 공동학습장에 불을 지르고 뛰쳐나간 아이를 찾아가 보면 술을 마시고 있거나, 어느 때는 유흥주점에서 여성들과 어울리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참담했다. 아이들 마음속에 굳게 응어리진 분노를 표출하게 도와야 했다. 방법을 고민고민하다가 당시 수련 시설에서 유행하던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역할극이었다.

아이들이 선생님이 되고, 나는 학생이 되어보기로 했다. 불을 켜놓고 역할극을 하려니까 서로 쑥스러워 불을 끄고 촛불을 켰다. 그리고 내가 학교에서 제일 보기 싫은 선생님이라 생각하고 무슨 말이든 하라고 했다. 그러자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 쏟아졌다.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예를 들자면 너 같은 게 선생이냐, 너 돈 봉투 받았잖아, 우리 학교 여학생을 성추행한 소문이 있던데 등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줄줄 이어졌다.

“원혁이가 오늘 학교에서 청소를 하다가 화가 난다고 유리창을 깼잖아. 너희가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고 나를 원혁이라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해봐라.”

실제로 원혁이는 그날 학교에서 유리창을 깼다. 처음에는 머쓱해서 웃기만 하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말을 꺼냈다.

“야, 유리창을 왜 깨냐, 그렇게 주먹이 세냐?” “피가 질질 나게 유리가 손에 박혀야 했는데, 쯧.” “너 같은 게 사람이냐.” 등 아이들은 진짜 선생님이라도 된 듯 화를 냈다.

나는 쩔쩔매는 척하면서 맞섰다.

“선생님이 제 마음을 아세요? 내가 왜 유리창을 깼는지 아세요? 선생님은요, 편견을 갖고요, 공부 잘하는 애들은 따로 챙겨주고 우리는 엄청나게 무시했잖아요.”

우리는 역할을 바꾸고 제법 뜨겁게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장난을 치듯 하던 아이들이 점점 진지해졌고, 그 상황 속에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듯 보였다. 역할극을 통해서 아이들은 자기 마음속의 응어리를 드러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낼 수는 없었다. 아이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병원에 데리고 다닐 비용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병원을 가자고 하면 모두 거부했다. 생각 끝에 잘 아는 임상심리사 선생님 한 분과 내 또래인 젊은 의사 몇 분에게 부탁했다.

그분들은 아이들에게 의사라고 말하지 않고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우리 집을 방문했다. 마치 친구처럼 이야기하면서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었고, 거기서 치료와 상담이 이루어졌다. 굉장한 반응이었다. 아이들은 선생님들 언제 오냐고, 선생님 친구는 언제 오냐고 계속 물었다. 우리는 그렇게 2년 가까이 그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아이들은 점점 자기 말을 아낄 줄 알게 되었고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주위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지금도 당시 아이들은 그분들이 내 친구인지 안다. 성인이 되어 만나도 가끔 이렇게 묻는다.

“그때 예쁘장하게 생겼던 그 선생님, 선생님 친구는 지금 뭐 하세요?” “병원에 계신단다.” “병원에 입원했어요?” “아니, 그 뜻이 아니라 의사 선생님이 되셨어!” “그죠? 그랬어요. 좀 의사 선생님 같았어요.” 지나간 세월만큼 아이들은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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