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정(광주 진남중학교 교장)

 

박주정 광주 진남중학교 교장

교육청 생활지도 담당 장학관 시절 이야기다. 어느 중학교 학부모가 항의 전화가 왔다. 우리 아이가 인권침해를 당해서 화가 나고 그 선생님을 학교에서 근무하지 못하도록 조치해주라는 요구였다.

즉시 그 학부모를 만났다. 사연인즉 한문 시간이었다고 한다. 아이가 책도 가져오지 않고 한문 수업을 듣지도 않았다. 선생님이 불러내서 그 아이에게 훈계를 했는데 듣고 있다가 되려 선생님께 심한 욕을 했다고 한다. 흥분한 선생님은 그 아이를 밀쳤고 욕도 하였다고 한다. 학부모의 흥분은 가시지 않았다.

학교를 방문하기 전에 그 선생님의 이름이 누구시냐고 물었다. “안○○ 선생님이라고 한문 선생이어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이름이었다. ‘안○○ 선생님, 안○○ 선생님’ 생각이 났다. 내가 시골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아주 잘 생긴 총각 선생님이었다. 학생들에게 인기도 있었고 공부도 잘 가르쳤던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어릴 때 앓은 소아마비로 몸이 불편했다.

혹시 그 선생님일까? 은사님이라면 어떻게 조사를 하지? 교육청 장학관으로서 망설여졌다. 학교에 전화를 해서 그 선생님이 혹시 다리가 불편하시냐고 물었다. 그런다고 했다.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냐고 물었더니 내가 예상했던 것과 비슷했다. 그 선생님이다. 몇십 년의 세월을 두고 제자가 선생님을 조사를 한다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다. 그러나 문제는 풀어야만 했다. 선생님과 통화를 하기로 했다. 나는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선생님, 학교에서 00 학생 체벌 문제로 학부모의 민원이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지도할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이 그 아이를 잘 가르치고 싶었다는 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욕심이 없었다면 아이가 자든지 말든지 두었을 텐데요. 잘 가르치고 싶어서 아마 훈계를 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욕을 하자 선생님께서 밀치고 욕을 하셨나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책도 없지, 수업 태도도 그렇지. 그리고 대들어서 순간 못 참고 그렇게 됐습니다.”

선생님은 장학관인 내게 아주 순수히 그러면서 한숨을 섞으면서 이야기했다. “선생님, 지금 학생 엄마가 선생님을 꼭 징계해 달라고 항의하고 있습니다. 제가 방법을 한 가지 제안하겠습니다. 제가 선생님과 그 학생 엄마를 만나게 해 드릴테니 진심어린 사과를 한 번만 해주십시오.” “예, 그러면 좋지요. 정말 후회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을 했다. “00 어머님, 그 선생님은 제가 알고 있는 선생님입니다. 제 중학교 때 은사님이셨고 다리가 좀 불편하지만 굉장히 열정 있는 선생님입니다. 00이가 공부를 하든지 말든지 방치하고 그랬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제가 통화해 보니 가르치고 싶었던 심정이 느껴집디다. 그 선생님께서 어머니께 사과를 한다고 합니다. 한번 받아주시겠습니까?”

몇 번 망설이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어머니에게 한 가지를 더 부탁했다. “어머님, 공교롭게도 제자가 장학관이고 조사자입니다. 이 문제를 제대로 풀려면 이렇게 하시게요. 먼저 선생님이 사과를 하면, 어머니도 내 자녀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었으니 잘 보살펴달라고 말미에 그 말 한마디만 해주셔요.” 또 망설였다. “그렇게 해야 아이도 기를 펴고, 선생님도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날 밤 학부모를 만나서 푸짐하게 저녁을 대접하고 마음을 풀어드렸다. 그 분은 내 입장을 이해해 주었고 다음 날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고개를 숙이고 말을 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용서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녀의 잘못도 인정했다고 한다. 감사했다. 바로 선생님께 전화드렸다.

“선생님, 마무리가 잘 될 것 같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교육청에서도 더 이상 조사를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그 아이를 잘 챙겨주셔요.” 마무리 말을 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은 아무 말도 안하고 계셨다. “미안합니다만 혹시 이름이 누구신가요?” “그건 왜 물으세요?” “아니요.” 선생님은 머뭇거렸고, 나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선생님, 왜 물으세요?” 선생님은 또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선생님, 혹시 제 목소리가 낯익으세요?” “네, 그렇습니다. 혹시 박주정 장학관 아니세요?”

“아닌데요, 왜 그렇게 말씀하셔요?” “우리 제자가 교육청에 장학관으로 계시는데 그 목소리하고 너무 비슷해서 한번 여쭤본 겁니다.” “그분은 따로 계셔요, 저는 아닙니다.”

나는 약간 과장된 어투로 단호하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선생님이 정년 할 때 뵈러 갔다. 선생님께서 네가 교육청에 근무한 줄은 알았지만 찾아가지 못했다면서 고백처럼 말했다. “얼마 전에 내가 학생을 때려서 교육청에 소란을 피웠는데 혹시 너 그 사건 아느냐?” “선생님, 저는 잘 모릅니다. 그런 일이 있었어요?”

선생님하고 헤어져 돌아오는데 가슴이 먹먹했다. 학생 인권, 선생님 교권…. 이런 단어들이 나올 때마다 은사님이 떠오른다. 살아온 시간의 차이가 있으니,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 수 있겠지만, 선생님은 여전히 학생들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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