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김선비가 이야기를 마치고 여인을 바라보았다.

“선비님의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상진 정승이 음덕을 베풀어 목숨을 이어간 것과 천하의 명점술가 홍계관에 얽힌 이야기를 소상히 잘 알고 계셨군요”

여인이 김선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만갑이라는 이름난 점술가가 오늘 밤 이렇게 당신을 만나게 하였는데, 그것 또한 기가 막힌 인연 아니겠습니까?”

김선비가 묵묵히 여인에게 말했다.

“좋습니다. 간밤의 꿈자리도 참 기이하다 여겼는데 선비님과 소녀는 각별한 인연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그런데 선비님께서 과거시험에 연연하는 까닭은 혹시 부와 권력에 대한 남다른 욕심이 있어 그러한 것은 아니온 지 궁금하옵니다”

여인이 눈망울을 말똥거리며 말했다. 김선비는 대답을 그 즉시 하지 못하고 잠시 생각에 잠기는 것이었다. 둥근 이마에 고운 피부를 가진 맑은 눈빛의 여인이 김선비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윽고 김선비가 입을 열었다.

“허흠! 일신수양(一身修養)을 해온 선비로서 어찌 부와 권력은 재앙(災殃)의 문(門)이라는 것쯤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지조(志操) 높은 훌륭한 선비는 예로부터 마음에 품은 애민(愛民)의 뜻을 실현하기 위하여서만 출사(出仕)하기로 하였고, 또한 난세(亂世)에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뜻을 가슴에 품고 거친 밥을 먹으며 초야(草野)에 묻혀 살기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조카를 죽이고 반대하는 동생들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의 위세를 등에 업고 온갖 악행을 저지른 홍윤성이나 남이 장군을 모함하여 죽인 유자광 같은 사악(邪惡)한 자가 득세(得勢)하는 세상에서 출사는 죄악이요, 명운을 자초하는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애초에 과거시험에 뜻을 두어 평생 공부를 하였기에, 그 결과를 반드시 매듭을 짓고 싶을 뿐입니다.”

조용히 김선비의 말을 듣고 있던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들었다. 아마도 여인은 김선비가 어느 정도의 정신세계를 이루고 있는지 넌지시 물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시군요. 그러시다면 반드시 이번에는 뜻을 이루어 귀하게 되실 것입니다. 부와 권력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가슴에 품은 뜻을 지키고 자신을 보존하며 사실 분이시군요. 비록 수절하는 여인의 도리는 아니 오나 오늘 밤 기꺼이 소녀, 선비님의 깊은 뜻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여인이 흔쾌히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김선비가 재빨리 일어나 고개를 수그려 여인을 향해 넙죽 엎드려 절을 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깊은 뜻을 헤아려 주시어 감개무량(感慨無量)하옵니다!”

“그래요. 선비님은 잠시 이 방 안에서 기다리세요. 이 밤 선비님과 백년가약(百年佳約)을 맺는 마당이니 소녀, 조촐한 주안상(酒案床)이라도 마련해 올 것이옵니다”

여인이 말을 하고는 등불을 켜 들더니 부엌문을 밀고 나가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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