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잠시 후 여인은 조그마한 상에 집 안에 있는 마른 생선과 육포를 찾아 차려 들고 들어왔다. 잠깐만이었으나 재빠르게 주안상을 마련하는 솜씨에 김선비는 놀랐다. 더구나 수절과부(守節寡婦)가 김선비의 말뜻을 용케 알아듣고 생각을 바꿔 지아비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은 것에 대하여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여인이 마음을 잘못 먹고 자칫 비명을 질렀다가는 몽둥이를 들고 달려드는 사내들로 인해, 김선비는 이 밤 수절과부를 범하려 드는 파렴치한으로 몰려 흠씬 두들겨 맞고 황천객이 되고 말 것이 아니었겠는가! 과연 예사로운 여인이 아님에 틀림이 없다고 여기면서 김선비는 속으로 몹시 감탄(感歎)하고 있었다.

“선비님, 집안에 갖추어 둔 것이 없어 차린 것이 별로입니다”

여인이 그렇게 겸양(謙讓)의 말을 하고는 방안에 둔 술병을 들고 와서 자리에 앉았다.

“아이구! 이 야심한 밤에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습니까? 제 뜻을 거절하지 않고 이렇게 받아주시는 것만도 그저 깊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김선비가 공손하게 말했다.

“자! 이제 마음을 푸시고 선비님께서 한잔 받으시지요. 낯선 여인의 방에 한밤에 이렇게 들어오신 것을 보면 분명 목숨을 걸고 오셨을 터인데 이제 마음 놓으시고 잔 받으십시오.”

여인이 김선비에게 술잔을 권하며 말했다.

“예! 감사하고 또 감사하옵니다!”

김선비는 여인의 말하는 태도에 속으로 깊이 탄복(歎服)하며 고개를 깊이 수그려 예를 표하면서 말했다. 이만큼의 마음 씀과 기품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라면 가히 군계일학(群鷄一鶴) 출중한 규수라 할 만하지 않은가! 김선비가 여인이 건네오는 술잔을 받고는 여인에게 술을 권하며 한껏 고무(鼓舞)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오늘 밤 그대를 만나고 보니 목숨을 걸고 이 방에 들어온 것이 참으로 잘했구나 하고 여겨집니다. 더구나 사랑하는 분을 여의고 마음이 아직 불편하실 터인데 선뜻 마음을 열어 소생을 보살펴 주시니 과연 천생연분(天生緣分)은 따로 있는 것이로구나 하고 생각됩니다”

“좋습니다! 선비님께서 좀 전에 남이 장군과 권람의 여식과 거지 상진과 이대감의 여식에 대한 혼례(婚禮)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으셨습니까!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람에게는 타고 난 제각각의 절대로 피해 갈 수 없는 숙명(宿命)의 인연(因緣)이 있는 것이라고 여겨졌고, 여기까지 목숨 무릅쓰고 들어오신 선비님의 그 용기(勇氣)를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선비님께서 목숨을 각오하고 오셨으니 의당 소녀도 수절과부의 본분을 버리고 목숨을 걸고 이 운명(運命)을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정한 것입니다…… 자! 한잔 드시지요! 서방님!”

너무도 감동하여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김선비를 향해 당돌하게 ‘서방님!’이라고 부르며 순간 여인이 술잔을 부딪쳐 오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을 들은 찰나 김선비는 가슴 짜릿한 환희만면(歡喜滿面)의 얼굴로 여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그대로 술잔을 ‘쨍!’ 하고 부딪치고 마는 것이었다. 드디어 바야흐로 둘만의 황홀(恍惚)한 초야(初夜), 부부지정(夫婦之情)을 맺는 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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