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정(광주 진남중학교 교장)

 

박주정 광주 진남중학교 교장

광주 서부교육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이다.

코로나19의 팬데믹으로 암흑과 절망의 2년여 시간을 보냈다. 원격수업을 도입했으나 선생님도 학생들도 낯설었다. 선생님은 이전보다 훨씬 많은 준비를 했지만 효과적인 교수 방법을 찾지 못해 고전했다. 학생들은 마우스 클릭만 하다가 한 학년을 마쳤다. 친구를 깊이 사귀기 어려웠고, 선생님 얼굴조차 제대로 볼 기회가 부족했다. 특히 초·중·고 1학년 신입생들은 새학기 특유의 활기를 맛볼 수 없었다.

코로나19 2년 차에는 등교와 재택 수업을 병행했다. 국·영·수 등 일부 교과 수업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지만, 집단활동이나 실습을 많이 해야 하는 교과의 어려움은 여전했다. 그 중에서도 강사님을 모시거나, 관심 분야별 이동수업이 꼭 필요한 진로체험 프로그램의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우리는 6·25동란 중에서도 아이들의 꿈을 키우는 교육을 멈추지 않았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맨바닥 천막교실에서 포탄소리를 들으면서 가르치고 배웠다. 전쟁터에서도 공부했는데,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코로나19 때문에 아이들의 꿈을 키우는 진로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겼다.

진로체험 프로그램을 추진하되 이전의 관행은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시대에 호응하는 분야를 찾기로 방향을 정했다. 예컨대 지금까지는 ‘직업교육 박람회장’에 다녀오는 정도가 진로체험 프로그램의 전부였다. 박람회장에 가면, 무언가 좋은 기계나 제품을 만들어 놓고 업체가 홍보를 했다. 학생들이 다가가면 “만지지마, 보기만 해~” 이런 식이었다. 체험학습이라지만 체험을 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흥미를 가질리 만무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직업은 획기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비하여 우리 학교는 ‘K-명장’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명장은 그 분야 최고의 마이스터이자 한 분야에서 탁월하게 앞서가는 신지식인들이다. 나는 작정하고 각 분야의 명장들을 두루 만나보았다. 다양한 분야에서 빼어난 마이스터들이 활약하고 있었다. 최고의 거장이 될 때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해당 분야의 레전드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보유한 유무형의 자산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했다.

학생들에게는 어떤 꿈을 갖고 있고, 어느 분야의 진로 수업을 듣고 싶은지 설문조사를 했다. 조사 통계를 바탕으로 10개 분야를 정하고, 이 분야의 명장들을 모셨다. 대부분의 일이 그렇지만, 이 사업도 예산이 필요했다. 시의회에서 나가 직접 계획을 발표했다.

“저희들의 계획은 이렇습니다. 수업시간에 하는 집단강의나 관행적으로 해온 반별 진로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학생들이 원하는 분야의 명장, 학생들을 지도할 진로교사 한 명, 그리고 10명의 학생을 한 팀으로 꾸릴 것입니다. 아이들의 요구를 조사한 결과 관심 분야는 IT와 드론, 방송, e-게임, 식문화, 자동차, 의류, 바이오식품, 공예, 뷰티, 웹툰으로 압축됐습니다. 이 분야 각각에 1개 팀을 배치해 배우는 겁니다. 사전에 학생, 학부모에게 충분히 홍보하고 인터넷으로 접수할 예정입니다.”

실제로 공지한 날, 10개 분야 총 100명을 모집하는데 1분 만에 접수가 끝나버렸다.

명장들은 자신이 살아온 얘기, 체험담을 아이들에게 들려주면서 흥미를 유발시켰다. 교육은 철저히 현장 체험 위주로 진행했다. 대화 형식의 수업 과정에서는 명장들이 실제 직업과 연계하여 진로 컨설팅을 해주었다. 총 20시간 20차시로 진행된 프로그램이었다. 아이들과 학부모 모두가 좋아했으며, 만족도 또한 높았다. 우리 선생님들은 강의, 실습, 체험 현장을 영상으로 상세하게 담아 참가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모든 학교에 배포했다.

다른 진로캠프와 비교하여 ‘K-명장과 함께하는 진로캠프’가 특별한 성과를 거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학생들의 관심과 흥미를 중심에 놓고 진행했기 때문일 것이다. 전체 학생을 강당에 모아 놓고, 특강 형식의 진로교육을 할 경우 자신의 관심 분야가 아니면 아이들은 외면하기 일쑤였다. 학교마다 진로교사가 있지만, 일선 학교에서 예산과 인력풀을 확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교육청 차원의 큰 틀에서 시범사업 형식으로 추진한 이유이다.

수업하는 명장이나, 명장 후계자를 꿈꾸는 학생들이나 반응이 너무 좋았다.

“정말로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쁩니다. 어린 나이인데도 그렇게 진지할 수 없고, 반응이 정말 좋아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학생들은 수동적으로 수업을 따라가지 않았다. 명장들한테 직접 듣고 대답하면서 프로그램을 같이 만들어가는 참여자의 역할을 했다. 속 깊게 변화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부모님들은 감동했다. 막연했던 자신의 꿈을 구체화할 수 있는 실천적 진로 프로그램이었다.

‘K-명장과 함께하는 진로캠프’ 프로그램은 바로 다음 해에 시교육청 차원으로 확대되었다. 사업 규모와 예산이 더 커져서 지금은 자유학기제나 고교학점제로 연계해가고 있다. 이 프로그램 또한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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