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 토요일 처제에게서 오랜만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자동차를 캐피털 할부로 사려고 하는데 캐피털 할부 대신에 신용카드 할부로 사라고 한단다. 할부금리는 큰 차이가 없고, 할부기간은 캐피털 할부와 똑같이 이용할 수 있으며, 카드 혜택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신용카드 할부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 다른 대출을 받을 때 유리하다는 것이다.

처제는 어떻게 해야 하냐며 재촉했고, 필자는 언뜻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캐피털 할부를 아예 쓰기 어렵게 하는 DSR 규제가 과연 합리적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경제적 실질이 같은 신용카드 할부와 캐피털 할부를 다르게 규제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혹시 DSR 한도가 거의 꽉 찬 사람에게 신용카드 할부가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래서 처제에게 시간을 좀 달라고 하고 주말 동안에 DSR 규제와 관련 문헌을 찾아 꼼꼼히 살펴보았다. 한 마디로 복잡했다. 이거는 되고 저거는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저거는 되고 이거는 안 되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주택담보대출을 끼고 집을 산 사람은 캐피털 할부로 자동차를 구매할 때 DSR이 할부 한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 캐피털 할부로 자동차를 구매한 사람은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DSR이 대출 한도에 영향을 준다.

처제에게 줄 해답은 찾았다. 현재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1억 원이 넘고 또 다른 대출이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면 할부금리가 무조건 낮은 것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줬다. 또한 카드 혜택을 준다고 해서 신용카드 할부를 이용하지는 말라고도 당부했다. 당장의 혜택이 커 보일지 몰라도 이자는 길면 5년 동안 내야 하기 때문이다.

믿음직한 형부 노릇을 완수한 듯해 기분은 좋았으나 왠지 처음 가진 의문이 필자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원래 DSR 규제는 담보 위주의 여신심사 관행과 주택담보대출의 빠른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가계대출을 전방위적으로 제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괜찮다. 가계대출이 부실화해 금융위기가 일어나는 것은 반드시 방지해야 하니까.

그러나 금융이 가지는 본연의 역할도 생각해봐야 한다. 가계대출 부실화를 막겠다고 실물경제 성장을 지원하는 금융의 역할을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해외에서도 DSR 규제의 주된 대상은 주택 가격 버블과 금융 불안정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는 주택담보대출이다. DSR 규제로 자동차와 같이 내구재 소비를 지원하는 캐피털 할부를 제한하는 국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자동차산업은 우리나라 실물경제가 여기까지 성장하는 데에 든든한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현재 수출 1위 품목도 자동차다. 반도체가 힘쓰지 못하고 있는 지금, 자동차가 큰 효자 노릇을 해내고 있다. 자동차 수출이 잘되려면 자동차 내수가 좋아야 한다. 자동차 내수가 좋아야 실물경제가 산다. 그러려면 캐피털 할부가 자동차 내수를 더 받쳐줘야 한다.

필자의 질문에 금융당국이 이렇게 답해주면 좋겠다. “캐피털 할부도 신용카드 할부처럼 DSR 규제를 받으면 안 되겠다. 국가경제 성장을 위해!” ※본 기고는 헤럴드경제와 제휴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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