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오르는 수증기과 비 ‘운치’…따듯한 온천욕에 피로 ‘사르르’

뉴질랜드 남섬에서 30일 여행 계획
5월 중순에 가을 시작…빠른 일몰
크라이스트처치서 핸머 스프링으로

마을 중앙 탐험가 ‘토마스 핸머’ 동상
지명도 ‘핸머’ 이름서 기원…영향력
관광객·현지인들 함께 온천욕 즐겨
15가지 다양…취향따라 고루는 재미
물놀이 시설도 구비 아이들도 즐거워

뉴질랜드는 입헌군주제로 공식적으로 국가원수는 엘리자베스 2세를 승계한 찰스3세다. 1901년부터 사용한 국기에는 파란색 바탕에 유니언 잭 그리고 4개의 별이 그려져 있다. 바탕색인 로열블루는 뉴질랜드 푸른 바다와 하늘을 상징한다. 면적은 한반도 보다 넓고 약 480만 명이 넓은 땅을 여유롭게 관리하며 산다.

남섬은 북섬보다 산이 많고 해발 2천300m 이상 되는 곳도 233개나 된다. 가장 높은 산은 마운트 쿡으로 해발 3천754m,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백두산 장군봉보다 약 1천m 더 높다.

나는 남섬에서만 30일 동안 여행할 계획이다. 크라이스트처치 마지막 밤엔 비가 내렸다. 이곳은 5월 중순이지만 가을로 접어들며 해가 일찍 떨어지고 아침 7시에도 어두운 밤이다. 비가 내리면서 기온은 뚝 떨어져 체감온도는 실제보다 더 춥게 느껴졌다. 3박을 이곳에서 묵었기에 오랜만에 짐을 꾸린 것 같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짐을 싸는 손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이곳에 살 것 아니면 여행자는 미련없이 길 떠나는 게 순리다.

장기간 여행하며 매번 느낀 건 주변 환경에 익숙해지고 사람과 정이 들만하면 떠날 시간이다.

시내를 벗어나자 바로 자동차 전용도로에 진입해 시속 100㎞ 이상의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 속에 끼어 2차선로 천천히 달렸다. 서툰 운전으로 왼쪽 밖으로 나갈 것 같다며 불안해 한 아내의 핀잔을 듣고 과감히 중앙선을 오른쪽 어깨에 걸친단 생각으로 붙이니 정상적 주행을 할 수 있었다.

쭉 뻗은 길 양쪽에 피어난 유난히 파란 잔디는 이슬을 머리에 얹은 채 새색시처럼 빛났다. 목장에는 젖은 털을 짊어지고 목가적인 풍경에서 풀을 헤집는 양 떼들이 펼쳐져 있다. 이곳 산은 숲이 군락지를 이룬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전부가 잔디밭처럼 파란 지평선을 이루고 있다. 우리 산처럼 잡목이 무성해 숲의 깊이를 알 수 없을 것 같은 환경과는 전혀 달랐다. 누군가 깨끗하게 예초기로 자른 것처럼 정돈된 모습이다.

길은 자동차 전용도로와 일반도로를 넘나들며 마을과 마을을 이으며 서북 쪽 방향으로 거침없이 이어졌다. 이곳은 자주 규정 속도가 변하니 운전자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중간지점 정도 마을에 잠깐 멈춰 삶의 무게만큼 얼굴에 주름살이 패인 할머니가 운영한 작은 카페에서 커피와 간식을 주문했다. 비에 젖은 이국땅의 정취를 감상하며 휴식을 취하고 목적지인 핸머 스프링에 도착했으나 비는 여전히 이방인 기분과는 상관없이 주적주적 내리고 있다.

마을 중앙에는 영국 출신 탐험가 토마스 핸머가 측량하는 모습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역사에 따르면 이곳 지명이 그의 이름에서 기원했을 정도로 이곳 개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인물로 전해지고 있다.

온천은 약 15가지 정도 다양한 온천탕을 만들어 고객 취향에 맞는 탕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관광객과 현지인, 가족·연인들이 여러 탕을 오가며 비를 맞고 온천욕을 즐기고 있었다. 요금은 성인 기준 38달러이지만 60세 이상 노인은 25달러이며 손님들은 보관함, 수건 등 모든 것을 유료만 사용할 수 있어 신자본주의 민낯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불편했다. 1회권, 1일권, 2일권으로 구분해 입장권을 판매하고 실제 노인들이 2~3일씩 이곳에 머물며 온천욕을 즐기고 있다. 아침 10시에 문을 열고 저녁 7시에 닫으니 카페나 레스토랑이 인근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어린이들은 물놀이 시설이 있어 추위도 잊은 채 슬라이드와 각종 놀이시설을 즐기며 신나게 놀고 있다. 온천지역 답게 하룻밤 머물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할 때 주인이 먼저 묻는다. 손님들이 온천욕을 하겠다면 바로 대형 수건을 미리 챙겨줬다. 수증기가 피어나는 옥외 온천탕에서 그동안 여행으로 쌓인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고 내일부터는 활기찬 모습으로 새로운 여행을 시작해 보자. 탕을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즐기는 온천이 우리 문화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양한 사람과 만났다 헤어짐을 반복하며 즐긴 온천욕도 여행을 통해 뜻밖의 장소에서 발견한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이곳 노인들 모습에서 미래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꼭 이 정도 여유롭게 살아야지. 역시 여행은 내게 참 스승이다.

글·사진/김진환 건축가

숙소 앞 마당
숙소 앞 마당
탐험가 핸머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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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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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머 스프링 거리
핸머 스프링 거리
깊어가는 가을
깊어가는 가을
핸머 스프링 광고
핸머 스프링 광고
온천장 입구
온천장 입구
온천 탕
온천 탕
온천 탕
온천 탕
온천 탕
온천 탕
마트에서 장봐 직접 조리한 저녁 식사
마트에서 장봐 직접 조리한 저녁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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