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훈(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이병훈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광주가 정율성 생가터를 중심으로 공원화하는 ‘정율성 역사공원’사업을 추진하려는 데 대해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기자들에 대한 배포문을 통해 “공산당 나팔수의 기념 공원을 짓겠다는 건가”라고 비난하며 철회할 것을 주장했고, 덩달아 여당의 강사빈 부대변인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다”고 맹비난했다. 이들의 발언은 몇 가지 지점에서 매우 시대착오적이며 위험한 발상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현 시대가 탈냉전시대라는 점에서 착오적이며, 요즈음엔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가 되어버린 ‘공산당’이라는 말까지 동원하여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 양극화를 심화한다는 점에서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정율성은 광주출신 음악가로서 일제강점기 때인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운동을 전개했으며, 중국인에게는 국가와도 진배없는 ‘파로군가’를 작곡했던 사람으로서 중국에서는 영웅시되는 인물이다. 중국의 3대 음악가로 통하며, 중국인 13억 명 중 8할은 정율성의 노래 한 곡을 알고 있다 할 정도로 대중적인 인물이다. 그를 기념하기 위한 ‘정율성 역사공원’사업은 사업예산 전부를 광주시가 부담하여 추진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오늘날을 탈냉전의 시대라 이야기한다. 탈냉전시대의 특징은 탈이념, 경제우선주의, 세계화로 요약된다.

소련의 해체 이후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념보다는 자국의 이익에 따라 과거에는 비록 적이었다 할지라도 자유스럽게 왕래하며 교류한다. 중국을 비롯해 수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개인소유를 인정하며 자본주의적 경제체제를 이미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도 중국과 그동안 긴밀한 경제적 협력을 유지해왔으며,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과거 사회주의 국가와도 에너지 등 차원에서 보다 많은 교역을 위해 무진장 노력한다.

여기에 ‘이념갈등’이라는 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특징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나라가 중국이다. 오늘날 중국을 공산주의(엄밀히 스탈린주의)라 이야기하는 것은 30년 전의 이야기다.

세계의 국가들은 글로벌 공급망 체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글로벌 공급망에서 밀려나지 않고 주도적 입장을 차지하기 위해 엄청난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한국이 최근 미국과 중국의 중간에 끼어 크게 곤경에 처한 이유도 글로벌 공급망의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미국과 중국의 경제전쟁 때문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세계는 이념이 아닌 경제우선의 시대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념적 잣대로 국내와 국제적 상황을 제단하려 한다면 그 손해는 철저히 국민이 질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꼴이다.

냉전시대의 이념갈등을 빌미로 지자체의 사업에 간섭하려는 현 정부의 태도는 개탄스럽기까지 하다. 광주는 민주화 역사 과정에서 국가가 이념을 앞세워 갈라치기하고 몰아세우는 데 이골이 나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도 상당수의 극우파 인사들은 광주 민주화운동에 공산주의라는 멍에를 씌우는 현재진행형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아직 검찰총장이었을 때 자유주의에 대해 조언했다고 알려진 최장집 교수는 탈냉전시대에 있어서 국내적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이 세 가지가 있음을 이야기했다. 첫째는 북한과의 평화지향적·공존적 정책방향 추구, 둘째는 미국, 일본, 중국과의 우호관계 유지, 셋째는 국내의 이념갈등 해소가 그것들이다.

이런 정책 방향에 현 정부가 어느 정도 부합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특히 이념 갈등의 문제는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나 민족문제를 위한 정책에 있어서나 무엇보다도 우선순위에 놓고 해결해야 할 과제다. 최 교수는 이에 대한 사례로 독일의 ‘동방정책(Ostpolitik)’을 제시하고 있다.

전 정부와 민주당이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여순사건과 제주 4·3사건을 두고 국가폭력에 대한 진상 규명과 피해 보상, 법적 토대 마련 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도 결국은 이념갈등이 야기한 수많은 피해를 지금이라도 치유함으로써 국민의 대립과 갈등 상황을 최소화하고 탈냉전의 시대에 새로운 민족사적 발전, 통일, 중국과 러시아 등 새로운 교역시장의 확보 등 국가적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을 박민식 장관과 강사빈 부대변인이 모를 리 없다. 정말로 이를 모른다면 그야말로 21세기 국민에 20세기 정부라 할 수밖에 없고, 알고도 이런 태도라면 국민을 ‘갈라치기’ 하는 비겁한 정치적 선동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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