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훈(남도일보 사회부장)

 

노정훈 남도일보 사회부장

‘민주·인권·평화 도시’ 광주가 철 지난 이념 논쟁에 휘말렸다. 국가보훈부가 막바지 공사만을 남겨둔 정율성 공원 철회를 요구하면서 이념 논쟁에 불을 지폈다. 느닷없이 보훈부 장관의 SNS 글로 촉발됐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왠지 모르게 철저히 계획된 시나리오에 의해서 이뤄진 일처럼 느껴진다.

박민식 장관은 지난 22일 자신의 SNS를 통해 광주시의 정율성 기념공원 조성 사업계획 전면 철회를 요구했다. 보훈부는 즉시 광주시의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사업에 대한 법적 조치 검토에 들어갔다. 이어 25일 보훈부 보훈단체협력담당관실 직원 3명은 4·19공법단체 대표들을 대동하고 역시 공법단체인 5·18민주유공자유족회 양재혁 회장,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황일봉 회장, 5·18공로자회 정성국 회장과 조찬 간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보훈부 직원들은 “박민식 장관의 정율성 공원 반대 발언을 지지해달라, 광고비는 4·19단체 쪽이 부담한다”면서 “5·18단체는 이름만 올려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어 황일봉·정성국 회장이 보훈부 요청을 수락했고, 5·18유족회는 이사회 논의를 거쳐 불참하기로 했다.

광고는 28일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30면에 ‘조선인민군 행진곡과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한 공산주의자 정율성 역사공원 건립을 강력히 반대한다’는 제목으로 실렸다. 조선일보는 이 광고를 근거로 29일자 1면에 ‘5·18단체들까지 “정율성 사업 반대”’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다음날 전국 12개 보훈단체 회원 2천여 명은 광주시청 앞에서 ‘공산주의자 정율성 기념공원 추진 철회’ 집회를 벌였다.

현재 정부와 여권, 보수단체까지 가세해 정율성 역사공원 철회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점을 비춰볼 때 압박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심하게 말하면 융단 폭격이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여권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광주시에 과거 수년간 진행된 정율성 기념사업 전반에 대한 방대한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행안부 감사관실도 지난 23일 광주시에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사업 관련 예산 자료 등을 요청해 놓은 상태다. 행안부는 직접 감사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시는 10월 말부터 진행될 정부합동감사도 받아야 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공익감사 청구에 따른 감사원 감사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 경우 그동안 세금이 투입된 정율성 기념사업 전반을 감사원이 들여다볼 수도 있게 된다.

특히 보훈부는 지방자치법 184조와 188조에 근거한 법적 조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박 장관이 직을 걸겠다고 나선 상황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통해 공원 조성계획을 막겠다는 의지다.

지방자치법 184조는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지자체의 사무에 대해 조언 또는 권고나 지도를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188조는 지자체장의 명령이나 처분이 법령을 위반하거나 공익을 해친다고 인정될 경우, 주무 장관이 서면을 통해 시정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만약 지자체장이 시정하지 않으면 명령이나 처분을 취소하거나 정지시킬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는 담대하게 나아가야 한다. 일부 세력이 줏대 없이 부화뇌동하는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

정율성 기념사업은 중앙정부가 먼저 시작했다. 35년 전 노태우 대통령 재임 시기인 1988년 서울올림픽 평화대회추진위에서 정율성 선생 부인인 정설송 여사를 초청, 한중 우호 상징으로 삼았다. 2015년 박근혜 대통령도 중국 전승절 기념식에 참석, 정율성이 작곡한 음악이 연주되는 퍼레이드를 참관했다.

광주와 시민이 옳다고 판단되면 압박과 핍박을 견뎌내고 나아가야 한다. 44년 전 군부독재에 맞서 광주는 그러했고 앞으로 그러해야 한다. 다만 광주의 주체인 시민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시민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여론을 수렴해 함께 이겨내야 한다. 그것이 광주공동체 정신이고 민주화의 성지로 불리는 광주의 역할이다.

또한 광주 출신인 정율성이 1933년 중국 난징에서 의열단에 가입해 일본군을 상대로 첩보 활동을 벌이는 등 항일 운동을 했다손 치더라도 1939년 중국 공산당에 가입했다. 해방 뒤에는 북한으로 건너가 활동하다가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한 점은 반드시 재평가 받아야 하고 광주도 더불어 이 문제를 명확하게 짚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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