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날개에 붉은무늬 오색빛깔 ‘살짝’ 감추고~

사무실 창에 붙은 나방 만찬 즐기려
참새·백할미새 등 분주한 움직임 목격
어른벌레, 짙은 녹색 치장 속 반전 숨어
날개 편 길이 37~143㎜…나방 중 큰 편
애벌레, 꼬리에 돌기 옆면에 빗금선 4줄
‘미이라 같은’ 기생당한 애벌레 인상적

 

 

녹색박각시(2023년 8월 25일, 영인면)
녹색박각시(2023년 8월 25일, 영인면)

한낮엔 여름의 한 가운데 와 있는 것처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아침 저녁으론 제법 시원한 바람에 선선함이 느껴진다. 사계절의 구분이 뚜렷한 우리나라였지만 요 근래에는 봄인가 하면 여름이요, 가을을 느낄 만하면 겨울 입구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이상기후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자연환경에 무관심할 때 자연은 우리에게 상상도 못할 재앙을 안길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새벽 이른 시간, 사무실 밖 유리창이나 벽을 유심히 들여다 보면 수많은 나방들이 붙어 있다. 자주 봐 왔던 나방들도 많지만 처음 보는 녀석들도 제법 있다. 나방들이 보인 다는 것은 분명 어딘가에 애벌레도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녀석들의 목록을 만들어 두고 주변의 산들을 돌아볼 계획을 세운다.

2023년 8월 25일, 새벽 이른 시간이다.

창문에 멋진 박각시 한 마리가 붙어 있다. 다른 곳으로 날아갈까봐 우선 카메라에 몇컷 담고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 한참을 잊고 있었는데 계속 창문에 붙어 있다.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내밀자 천천히 옮겨온다. 주변 나뭇잎에 올려 놓으니 자리를 잡는다. 이른 아침 시간이면 참새, 백할미새 등 이곳에 살고 있는 새들은 분주히 움직인다. 불빛을 보고 날아 든 나방들이 돌아가지 못하고 건물 벽이나 바닥에 붙어 있는 경우가 많아 만찬을 즐기려는 것이다. 가만히 두면 새들의 먹이가 될 것 같아 녀석의 날개 색상과 비슷한 나뭇잎에 옮겨 주었으니 오늘은 괜찮을 것 같다. 머리와 가슴은 짙은 녹색이고 배는 백록색이다. 앞날개에 백록색과 짙은 녹색 무늬들이 있고, 뒷날개에는 붉은 무늬가 있는 오색이 감춰진 아름다운 박각시다. 창문에 붙어 있을 때는 오색 무늬가 보이지 않았는데 나뭇잎으로 옮겨 놓으니 멋진 오색 무늬가 살짝 드러난다. 녹색박각시다.

녹색박각시는 박각시과(Sphingidae)에 속하는 나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58여종의 박각시가 알려져 있는데 몇몇 종은 낮에 꿀을 빨며 활발히 활동하기도 하지만 녹색박각시를 비롯한 대부분의 종은 밤에 활동한다. 날개 편 길이가 37~143㎜로 종에 따라 차이가 크지만 대체로 나방 중에서 큰 편이다.

2019년 9월 25일, 동천동 광주천변에서 녹색박각시 애벌레를 만났다. 광주천변에는 식재된 것으로 보이는 참느릅나무가 꽤 있다. 높지않은 참느릅나무잎에 꼬리에 돌기가 있는 애벌레가 보인다. 녹색 바탕에 작은 돌기들이 있고, 몸 옆면에 약간 붉은색과 흰색이섞인 빗금선 4개가 선명하다. 한참을 봐도 움직임이 거의 없다. 머리 부근에 기생벌의 고치가 많다. 녹색박각시 몸에서 살다가 나와서 고치를 튼 모양이다. 살아가는 방식이 좀 얄밉기는 하지만 자연의 섭리다. 녀석은 이렇게 생을 마감할 것이다.

2023년 9월 5일, 허운홍 선생과 함께 광덕산을 찾아 그곳의 나방 애벌레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조금 늦은 시기라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의외로 많은 애벌레들이 보였다. 박각시 애벌레들도 몇몇 보였는데 기생당한 후 껍데기만 남은 박각시가 인상적이다. 형태는 그대로인데 꼬리 앞부분만 구멍이 뚫려 있다. 미이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광주천에서 봤던 기생당한 녹색박각시 애벌레의 마지막 모습은 어떠했을지 궁금하다.

다 자란 애벌레는 흙속에 들어가 번데기가 되어 이듬해 5월 우화한다. 녀석도 기생당하지 않았다면 녹색으로 치장한 멋진 나방이 되어 훨훨 날아 다녔을텐데….

글·사진/이정학 숲 해설가
 

녹색박각시(2023년 8월 25일, 영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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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당한 박각시(2023년 9월 5일, 광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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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박각시애벌레(2019년 9월 25일, 광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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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느릅나무(2021월 10월 23일, 용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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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느릅나무(2018월 2월 25일 태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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