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제 (남도일보 대기자)

 

김갑제 남도일보 대기자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이 코앞이다. 내일부터는 귀성객들로 거리마다 활력이 넘쳐날 것이다, 귀성(歸省)은 부모님을 뵙기 위해 타향에서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의미이지만 조상의 산소를 찾아 인사하고 산소를 돌본다는 성묘(省墓)의 뜻도 포함돼 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언제나 그렇듯 귀성객 모두 올 추석에도 부모님과 조상님의 은혜와 덕을 기리고 형제자매와의 정과 사랑을 듬뿍 나누는 따뜻한 명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명절 때면 더욱 쓸쓸하고 가슴 아픈 이웃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들은 가족과 친구, 이웃과도 단절된 채 오늘도 도시와 농촌의 그늘에서 외로움과 싸우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다. 그들 중에는 “내가 죽으면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없다”면서 고독사에 대한 공포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맘때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설명해 주는 현실이라 하겠다.

올 추석 귀성길에는 ‘사랑이 있는 곳에 신도 있다’는 톨스토이의 단편 소설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언제 읽어도 가슴이 훈훈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따뜻한 인간애(人間愛)를 피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노인 마르틴 얘기는 사랑이 어찌 기독교만의 진리이며, 자비가 어찌 불교만의 진리일 것인가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작은 구둣방을 하는 마르틴 아브제이라는 가난한 늙은이는 예수님을 한 번이라도 만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그는 하루 일과가 끝나면 매일 밤 성경을 읽으면서 진리를 깨닫고, 그 소망은 더욱 커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성경을 읽다가 깜빡 책상에서 잠이 들었는데, 어떤 소리를 들었다. 속삭이는 듯한 소리는 자기 귀 옆에서 누가 가까이 대고 말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들렸다. ‘마르틴, 마르틴 내일 길을 보아라, 내가 갈 터이니.’그는 이 소리를 듣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침대에 가서 잠시 눈을 붙였다. 그리고 이른 아침 일어난 후, 그 소리에 대해서 믿는 마음과 믿지 않는 마음이 각각 반 반이었으나, 한번 믿어보기로 하고 창가에 가서 구두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마르틴은 창가에서 일을 하며 어젯밤 일을 계속 떠올라 지하 작업실에서 밖의 사람들이 오고 가는 것을 보고 있는데, 눈을 치던 늙은 병사가 지쳐 눈 속에서 추위에 떨며 쉬고 있었다. 그는 얼른 반 지하집으로 초대해 따뜻한 차와 빵을 대접했다. 대접하는 도중에도 혹시나 그리스도께서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길을 내다보았다.

병사가 나간 다음 이번에는 아기를 데리고 얇은 여름옷에 낡은 신발을 신은 여자가 창으로 다가 왔다. 그녀는 바람을 등지고 벽과 마주서서 아기가 춥지 않도록 감싸주려 했지만 감싸줄 덮개 하나 없었다. 마르틴은 밖으로 나가 돌층계 위의 그녀를 초대했다. 그 여자는 남편이 전쟁에 나가고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다가 길에서 쉬고 있었는데 이번에도 마르틴은 먹을 것을 대접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그녀가 돌아갈 때 낡은 외투와 약간의 돈을 주었다. “이것으로 목도리를 찾아 다시 두르도록 해요.”

여자가 가 버린 후 계속해서 창밖을 보던 마르틴은 한 노파가 사과 바구니와 나무가 든 주머니를 들고 가다 사과를 훔치는 소년과 실랑이를 벌이는 광경을 보게 된다. 마르틴은 뛰어나가 소년을 용서해 주라며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처음엔 소년을 경찰서에 데리고 가야 한다고 하던 노파도 감동해서 용서를 하고 소년도 노파의 짐을 들어주게 되었다.

그렇게 기대했던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저녁이 되어 성경을 보고 있는데 어두운 구석에 사람의 형체가 나타나 속삭이기 시작했다. “마르틴. 마르틴 너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지?” “누구를요?” 그러자 어두운 한 구석에서 늙은 병사가 앞으로 나오더니 빙그레 웃으면서 형체도 그림자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는 나였다”, 목소리가 말했다. 그러자 어두운 한 구석에서 아기를 안은 여자가 나타났다. 여자가 미소를 짓고, 빙그레 웃다가 이내 사라져 버렸다. ”그것도 나였어” 이어 할머니와 사과를 가진 사내아이가 함께 빙그레 웃으면서 마찬가지로 사라지며 목소리가 말했다. “그것도 나였다”

마르틴은 몹시 즐거워졌다. 성호를 긋고 안경을 끼고 성서의 펼쳐진 페이지를 읽기 시작했다. 페이지의 첫머리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가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또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그리고 같은 페이지 아래 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오 복음 제25장 40절)’

마르틴은 깨달았다. 꿈이 헛되지 않아 이날 어김없이 그리스도가 자신을 찾아왔고, 마르틴은 그토록 바라던 소망을 이루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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