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채(남도일보 디지털뉴스본부장)

 

윤종채 남도일보 디지털뉴스본부장

1983년 10월 9일 버마(현 미얀마)의 수도 랭군(현 양곤)에 있는 아웅산 국립묘지에서 북한의 폭탄 테러가 발생한 지 40주년을 맞아 1980년 당시 전남매일신문사에 근무했던 직원들과 함께 지난 7일 서울시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국가유공자 제1묘역 13호에 안장된 심상우 국회의원(옛 전남매일신문 사장) 묘소를 참배했다. 2013년 30주년 때 참배한지 10년 만에 다시 찾았다. 참배자들은 전남매일신문사 재직 시절을 회상하며 “이제 모든 시름을 놓고 영면하시라”고 했다.

전남매일신문 사장을 지내다 언론통폐합으로 전남매일신문과 전남일보가 합쳐져 1980년 11월 1일 창간한 광주일보의 명예회장을 맡은 그는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광주시 동구·북구 선거구에 출마해 민주한국당 임재정 후보와 동반 당선됐다. 1983년 3월 민주정의당 당직개편에서 총재 비서실장에 임명됐다. 지금이야 대통령과 집권 여당 대표가 서로 분리된 직책이지만 당시에는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했기 때문에 권력은 대통령과의 거리에 비례한다는 말도 있듯이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총재 비서실장은 여당 내에서 꽤나 무게있는 요직이었다. 심지어 영남 정권에서 심 의원이 호남 출신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인사였다.

사실 대통령 비서실장은 세계 각국에서 대통령제를 시행하는 나라이면 다 있는 직책이지만, 당 총재 비서실장은 좀처럼 보기드문 자리로 전두환 정권 때 신설된 직위이다. 심 의원은 평소 유머가 풍부한 분위기 메이커로서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데 매우 능숙했는데, 전 대통령이 실력과 유머감각을 모두 갖춘 심 의원을 높이 평가해, 전례가 드문 직위에 임명하면서까지 곁에 가까이 두려 한 이유들 중 하나일 것이다.

심 의원은 기자들을 상대할 일이 많아지자 분위기를 부드럽게 할 방편으로 유머를 조금씩 곁들이고 했는데 사실 원래부터 분위기를 띄우는데 일가견이 있는 쾌활한 성격이었다.

심 의원의 한 동료 의원은 “순직하기전까지 전두환 대통령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고 일각에서는 대권 후보로 불릴 정도로 뛰어난 지략과 출충한 정치 외교인의 모습을 보여준 사람으로 순직 이후 전 대통령이 가장 아깝게 생각한 정치인이었다”고 회상했다.

또 남재희 의원은 회고 글에서 “내가 정치에서 경험한 제일 가는 재담꾼은 심상우 의원이었다. 당시 정계의 만장일치일 게다. 함께 있으면 몇 시간이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웃긴다. 돌발적인 일에도 즉각 유머다. 내장산에서 세미나를 할 때 심 의원 선거구인 광주의 무등산수박을 차로 실어 왔다. 쪼개 보니 거의가 설익은 것이다. 그랬더니 심 의원이 마이크를 잡고 ‘사무국장에게 수박을 보내라고 말했더니 잘못 듣고 호박을 보냈지 뭐예요’라고 말했다. 그 심 의원은 코트 제스터(court jester·궁정 익살꾼) 역할을 맡다가 미얀마에서 불행을 당했다”고 썼다. 순직 당시 심 의원은 향년 45세였다.

심 의원의 3남 2녀 중 셋째 아들인 개그맨 심현섭씨는 그런 아버지의 성격을 닮아 개그맨으로 성공했다.

심씨는 2007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에 대해 “자상하기 그지없는 분으로 풍경화 그리길 좋아하셨고 갖가지 경험의 기회로 저를 이끌어줬다”면서 “젊었을 때 아버지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수첩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적고 다니셨다. 난 아버지의 끼를 물려받아 개그맨이 됐다”고 말했다. 심씨는 아버지를 여윈 뒤 가장으로서 어머니를 살뜰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1938년생으로 심 의원과 동갑인 아내 임옥남씨는 남편을 떠나보낸 슬픔을 안고 10년간 매일 현충원을 다니는 등 힘들게 살다가 2019년 5월 9일 지병으로 별세해 심 의원과 합장됐다. 향년 81세.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라. 나는 거기에 없다. 나는 잠들지 않는다. 나는 이제 바람, 햇빛, 빗물이다….’라고.

그렇게 17명의 영령들은 천의 숨결로 흩날리는 바람, 무르익은 곡식을 비추는 햇빛, 대지를 적시는 부드러운 비로 대대손손 우리 국민들과 함께 할 것이다.

아웅산 테러 1주년인 1984년 10월 9일 북녘 땅을 바라보는 경기도 파주 임진강 자락에 세워진 ‘미얀마 아웅산 순교외교사절 위령탑’ 비문에는 “원한을 넘어서서, 한 겨레, 한 울타리, 한 품속에서 같이 살자”라고 씌여 있다. 이렇게 분단의 고통을 극복하고 하나가 되자는 것이 바로 고인들의 숭고한 뜻이자,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 대한 엄숙한 당부이기도 하다.

자유를 향한 역사의 전진은 누구도 막을 수가 없다. 한반도 구성원 모두가 자유롭고 행복한 평화통일을 이루는 날까지 앞서 시인의 말처럼 고인들은 바람이 되어, 햇볕이 되어 우리를 이끌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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