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훈 (남도일보 사회부장)

 

노정훈 남도일보 사회부장

대한민국 고등교육기관이자 학문의 전당을 담당해 왔던 한 축인 지방 사립대가 위기다. 학령인구 감소와 교육 서열화로 인해 지방 사립대가 정원을 채우기도 어려워 고사 위기에 처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제는 정부의 각종 지원 정책에서도 밀려나는 형국이다. 말 그대로 사면초가다. 최근 한 지방 사립대 총장이 “버티면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이다”란 희망 섞인 말이 내 가슴에는 비수로 꼽힌다.

윤석열 정부의 교육부는 2026년까지 비수도권의 지방대 30곳을 ‘글로컬(Glocal) 대학’으로 지정해 지원하는 정책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와 지역 격차 등 현시점의 위기 상황에 대응해 대학과 지역사회 간 결속력 있는 파트너십을 맺어 글로벌 수준의 동반성장 견인을 목표로 한다. 올해와 내년 각각 10개교, 2025년과 2026년에 각각 5개교 등 총 30개교를 선정할 예정이다.

비수도권 대학 30개교에 총 3조 원이 투자되므로 글로컬대학으로 선정된 대학은 5년간 약 1천억 원 정도를 지원받을 수 있다. 지난 6월 예비 지정 15건이 발표됐다. 국립 8건(통합신청 4건 포함), 사립 7건이다. 다음달 초 최종 10건이 선정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국립 지방대와 대형 사립대가 선정되기 쉽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규모가 큰 지방대만 살리고 선정되지 못한 나머지 대학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학 구조조정의 신호탄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일부에서 사업 참여 반대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의대 정원 확대 문제도 규모가 작은 지방 사립대 입장에서는 먼 나라 이야기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을 공식화하고 지방 대학들에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자 지방 국립대와 4대 과기원 등이 의대 신설·증설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신설보단 기존 의대 정원을 늘릴 예정인데, 지방 국립대 의대 다수도 증원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논의의 자리에 지방 사립대는 숟가락조차 올리지 못한다. 말도 못 꺼낸다. 비참한 수준이다.

지방 사립대를 이대로 외면하는 게 과연 옳은 정책인지 묻고 싶다. 지방 사립대의 위기가 그들만의 잘못에서만 기인했는지 고민해야 한다. 지방 사립대의 위기는 예산을 지역과 대학이 아닌 중앙정부가 일률적으로 쪼개서 나눠준 게 문제였다는 지적도 많다.

한국사립대총장협의회에 따르면 2022년 교육부 고등교육 예산은 12조35억 원이다. 이 중에서 국립대 운영지원비 3조8천348억 원과 국가장학금 지원비 4조1천861억 원을 제외하면 3조1천246억 원에 불과하다. 이런 예산 규모로 전국 대학을 지원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이 예산도 국공립대학이 지원받기 때문에 사립대와 전문대는 지원받을 수 있는 금액이 더욱 적어진다.

다행히 내년도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 예산이 14조8천억 원으로 증액됐다. 고등교육 재정을 확충해 글로컬대학 지원, 첨단분야 인재양성, 대학생의 학비 부담경감 등에 전년 대비 5천912억 원을 증액해 투자한다는 방침이지만 지방 사립대를 살리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지방 사립대의 위기는 대학과 지자체의 협업 부족이 원인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경쟁력이 없다고 해서 지방 사립대가 사라져야 다른 대학이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정부와 지자체, 지방 사립대가 협업해 같이 살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투자하는 사업이 필요하다. 무너지고 있는 지방 사립대를 향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서울 소재 대학의 지방 이전 같은 헛물켜는 정책은 안 된다.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 완화 추진을 보면 정부가 지방 사립대 위기를 인지하고는 있는지 우려스럽다.

지방 사립대 역시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천편일률적인 백화점식 종합대학이 아니라, 특성화를 통한 살 길을 모색해야 한다.

지역 내 대학들의 중첩된 학과는 공유대학 형태로 전환하고 4차 산업혁명에 발맞춘 전공과 지역이 필요로 하는, 지역에 특화된 학과에 집중하는 것이 옳은 선택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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