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가슴다리 ‘방패’ 배끝다리 ‘긴돌기’ 꼬리다리…매력 ‘뿜뿜’
날렵한 전투기 내려앉은…카리스마 ‘뿜뿜’
배다리로 가지 잡고 가슴·머리·배 늘어뜨려
가슴다리 접는 독특한 자세로 ‘재주 부려’

국내 105종…날개 활짝 펴면 24~90㎜
살구·싸리·단풍나무 먹고 4월 께 우화
나방, 거친 털뭉치 같은 머리 보랏빛 앞날개

[특별기획=이정학의 ‘신비한 자연속으로’ ][156]재주나방
 

 

재주나방(2014년 4월 30일,  오도재)
재주나방(2014년 4월 30일, 오도재)

수많은 나방의 애벌레들을 만나면서 항상 느끼는 점은 모든 애벌레들이 나름의 생존 전략을 가지고 자연에 순응한다는 것이다. 먹고 먹히는 치열한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모든 것이 그저 신비스럽다. 수많은 알들에서 깨어나 어려운 애벌레 시기를 보내고 번데기가 되어 무사히 우화하여 짝짓기를 하고, 또 적당한 곳에 알들을 쏟아내고 생을 마감하는 나방은 어느 정도의 생존확률을 거쳤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애벌레가 재주를 잘 부린다해서 재주나방이라 이름 붙여진 나방이 있다. 재주나방과(Notodontidae)에 속하는 나방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꽃술재주나방을 비롯해 105여종이 알려진 큰 무리다. 어른벌레는 등불에 잘 찾아오며, 날개 편 길이가 24~90㎜로 종에 따라 차이가 크고 나방 중에서 큰 편에 속한다. 앉아 있을 때 앞날개가 배를 완전히 덮거나 일부분만 덮는다.

2017년 8월 19일, 곡성 태안사를 찾았다.

오래전부터 꼭 한번은 가 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순천에 거주하던 허운홍 선생과 여수의 김상수 저자와 같이 관찰에 나설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아쉬운 점은 김상수 저자가 급한 일이 었어서 회사로 돌아가 어른벌레를 많이 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꼭 만나고 싶었던 산왕물결나방 애벌레를 찾아 주어 너무 고마웠다. 허운홍 선생과 둘이서 천천히 애벌레들을 관찰하며 가는데 요상한 모습으로 열심히 움직이는 녀석이 눈에 들어온다. 참 재미있게 생겼다. 애벌레의 가슴다리는 길고, 배 끝마디는 방패처럼 생겼고 꼬리다리는 긴 돌기같다. 꼭 외계에서 온 생명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꼬리다리의 긴 돌기는 외계와 연락을 주고 받는 안테나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2018년 7월 14일, 장성 남창골 입암산성에서 재주나방 애벌레를 다시 만났다. 배다리로 가지를 잡고 가슴과 머리, 배 끝부분을 아래로 축 늘어뜨리며 가슴다리는 접는 독특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쉬고 있는 녀석이다. 방해를 받으면 가슴의 긴 다리를 휘두르며 한 성깔을 부린다. 참 재미있는 녀석이다. 꽃무늬재주나방 애벌레, 뒷검은재주나방 애벌레도 비슷하게 생겨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살구나무, 싸리나무, 단풍나무 등 여러나무를 먹고 사는데 7~10월 관찰이 가능하다. 산딸기, 줄딸기, 국수나무 등 장미과 식물을 먹고 사는 꽃무늬재주나방 애벌레도 함께 찾아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다 자란 애벌레는 낙엽층 사이에서 잎을 붙이고 번데기가 되어 이듬해 4월 우화한다.

재주나방은 어떻게 생겼을까?

2014년 4월 30일, 함양 오도재에서 재주나방을 만났다.

나방에 관심이 많은 숲해설가들과 함께 오도재에서 밤을 세웠다. 지리산제일문에 설치된 조명등을 보고 수많은 나방들이 찾아 온다. 주차장 가로등, 가게 자판기 불빛에도 어김없이 날아든다. 별 특징은 없어 보이지만 머리에 거친 털뭉치가 있고, 앞날개는 연한 보랏빛이 도는 갈색이며 옅은 회백색 점줄무늬가 선명하게 보인다. 재주나방이다. 지리산제일문쪽에 어떤 녀석들이 왔나 올라갔다 내려와 문닫힌 가게 밖에 있는 자판기 불빛이 환해 혹시나 하며 가 봤더니 재주나방이 앉아 있다. 다시 자리를 옮겨 주위를 보니 또 한 녀석이 있다. 얼굴을 보니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날렵한 전투기 같다는 생각도 든다.

오도재에서는 따로 불을 밝힐 필요가 없었다. 밤새 불이 켜져 있기 때문이다. 새벽이면 미쳐 숲으로 돌아가지 못한 나방들이 수두룩하다. 주변의 새들과 고양이들은 신났다. 풍성한 아침 밥상이 있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 밤새 불을 밝히고 있으니 주변의 나방들이 모여든다. 함양 군청에 일정 시간이 되면 소등해 달라고 민원을 넣었더니 그 후로 개선이 되었다. 우린 다시 발전기를 돌리며 나방을 만나야 하는 불편(?)은 있었지만.

글·사진/이정학 숲 해설가
 

재주나방 애벌레(2017년 8월 19일, 태안사)
재주나방 애벌레(2017년 8월 19일, 태안사)
재주나방 애벌레(2018년 7월 14일,  입암산성)
재주나방 애벌레(2018년 7월 14일, 입암산성)
재주나방(2014년 4월 30일,  오도재)
재주나방(2014년 4월 30일, 오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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