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건(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직무대리)

 

임춘건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직무대리

영국 런던의 트라팔가광장에 있는 국립미술관(The National Gallery)에는 낭만주의화가 윌리엄 터너(J.M.W. Turner, 1775∼1851)의 작품 ‘전함 테메레르(The Fighting Temeraire)’라는 유화가 전시돼 있다. 1839년 작품으로,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으로 선정된 바 있다.

테메레르호는 1805년 트라팔가해전에서 영국이 수적 열세에도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를 격파하고 승리하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운 전함으로, 영국이 19세기 대서양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세계무역을 선도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림 속 테메레르호는 더는 전쟁영웅의 모습이 아니다. 역할을 마감하고 선박해체장으로 가기 위해 훨씬 크기가 작은 증기선에 의해 템스강변으로 예인되는 처량한 모습이다. 화염을 내뿜고 있는 증기선은 18세기 후반 증기기관과 기계화로 상징되는 산업혁명의 산물로, 엄청난 변화를 표현하고 있다. 전쟁영웅이었던 테메레르호라도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흐름은 거스를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 속에서 학령인구 급감에 따른 대학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현재 고3 학생 수는 39만여명으로, 지난해보다 3만2000명 이상 줄어 사상 처음 40만명 아래로 떨어졌으나 2024학년도 대학(전문대학 포함) 모집인원은 50만명을 상회하고 있다. ‘N수생’을 고려하더라도 2024학년도 입시가 마무리되는 내년 봄에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 예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물론 대학들도 저마다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연차별 대학 모집인원 감축, 산업 현장 의견을 반영한 지속적인 교과과정 개편, 학과·학부 칸막이 해소를 위한 자율 전공 확대, 전과·전공 선택 유연화, 적극적 외국인 유학생 유치, 시너지 효과를 위한 대학·캠퍼스 간 통합 등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지방대학 소멸위기 속에 지역과 대학의 동반 성장을 이끄는 ‘글로컬(Glocal)대학’이 주목받고 있다. 글로컬대학으로 선정된 학교는 5년간 총 1000억원을 지원받는다. 그야말로 가뭄 속 단비다. 교육부와 글로컬대학위원회는 2026년까지 30개 대학을 글로컬대학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고용노동부 산하 직업교육기관인 한국폴리텍대학도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속적인 변신을 진행하고 있다. 산업 수요와 변화 흐름을 반영해 반도체, 인공지능융합(AI+x), 저탄소 관련 분야 20개 학과를 신설하고, 바이오, 모빌리티, 뿌리·기간산업 중심 미래혁신성장동력 분야 15개학과를 개편하는 등 2023년부터 해마다 35개 내외 학과를 신설·개편하고 있다. 산업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대규모 학과 신설·개편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혁신 노력이다.

해마다 대학들은 무한경쟁 체제 속에서 총성 없는 입시전쟁을 치르고 있고, 생존을 위해 악전고투 중이다. 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점은 더 강하게, 약점은 더 보완하는 다양한 변신이 필요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신속하게 인지하고 ‘대학’이라는 이름이 지닌 전형적인 틀을 깨뜨릴 때가 이미 지나고 있다. 생존을 위한 대학의 변신은 바로 해내야 할 필연적 과제다.

※본 기고는 헤럴드경제와 제휴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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