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식(남도일보 정치부장·국장대우)

 

김명식 남도일보 정치부장·국장대우

13년전이다. 기자는 광주 새날학교 학력인정기관 인정과 광주공항(민간공항·군공항)의 무안국제공항 동시 이전에 관심을 갖고 사회단체와 함께 한 바 있다.

새날학교는 외국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 이른바 중도입국 다문화자녀가 다니는 학교다. 부모를 따라 한국에 온 외국 학생들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는 교육시설이다. 교실은 폐교된 옛 광주 평동남초등학교를 활용했고, 자원봉사자들이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천영 목사를 비롯한 활동가들이 최소한 한국생활에 필요한 언어와 문화라도 익히게 하자며 2007년부터 한 두명씩 모아 가르쳤다. 기자가 첫 인연을 맺은 2010년에는 그 숫자가 60명을 훌쩍 넘겼다. 후원금과 자원봉사로 교육하는 게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학생들이 한국어를 쓰고 읽고 들을 수 있어도 학력미인가시설이어서 중학교나 고등학교 등 상급학교에 진학할 자격을 갖출 수 없었다. 학력인정교육기관 지정이 시급했다.

다행히 2010년부터 진행된 지역사회의 헌신적 노력에 이명박 정부와 광주시교육청이 화답하면서 2011년 5월 학력인정위탁기관으로 지정됐다. 다문화 자녀를 위한 정식 교육기관이 된 것이다. 전국 최초였다.

광주에 가면 공부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게 알려지자 전국에서 학생들이 몰려왔다. 인가받은 학생 정원은 60여명인데 실제는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다녔다. 부모들도 함께 왔다. 광주 광산구 월곡동의 고려인과 다문화가족 집단거주지는 이렇게 형성됐다.

광주에 둥지를 튼 다문화가족과 고려인은 3D 여파로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인근 하남공단, 평동공단, 소촌공단은 물론 담양, 장성 농공단지에 노동력 확보 숨통을 트이게 했다. 무안과 함평, 담양 등 농촌지역에도 일손을 제공했다.

월곡동 인근 초·중학교의 학생수가 증가했다. 한 초등학교는 전교생 절반 이상이 다문화 자녀였다. 이 학교는 다문화 학생들이 없었으면 분교가 됐을 것이라며 안도하기도 했다. 주거형태가 아파트로 옮겨가면서 빈 집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다. 슬럼가 위기에 처한 주택가가 활력을 되찾았다. 상가를 찾는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고려인 삶과 문화를 비롯, 다양한 나라의 전통과 문화가 함께 왔다. 광주의 역사와 문화는 더 넓어지고 깊어졌다. 아이들이 늘면서 미래도 밝아졌다. ‘인권도시 광주’의 브랜드가 세계에 알려졌다. 지난해 세계고려인단체총연합회 출범식이 광주에서 열렸고, 본부기구를 광주에 둘 정도였다. 새날학교가 불러온 나비효과였다.

같은 시기 관심을 가졌던 군공항·민간공항 무안 동시이전은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자리다. 지자체간 갈등만 더 커졌다. 강기정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지사가 이달 올들어 두번째 ‘공항 회동’을 갖기로 했지만, 김산 무안군수와의 3자 만남은 기약없다.

뜻을 같이한 사람들과 2010년 12월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광주 민항·군공항 무안이전 모색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군공항 이전을 놓고 광주시와 전남도, 무안군이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동시이전을 표방한 토론회는 처음이었다. 시·도 항공담당 책임자급 인사와 국토부 항공정책실과장, 국토연구원센터장, 시민단체 대표 등이 참석자여서 개최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막이 오르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토론회 당일 무안군 주민 300여명이 대형버스를 타고 몰려온 것이다. 최대 200명의 방청석에 입추 여지가 없었다. 하나같이 ‘군공항 이전 결사 반대’ 붉은 머리띠를 메고 있었다. 자극적 구호가 적힌 피켓도 들었다. 심지어 “오늘 토론회 열리는 가 봐라”, “엎어버리겠다”는 위협성 발언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광주시 입장을 대변하는 ‘관제 토론회’로 생각한 게 이유였다. 시·도 상생협력을 바라는 시민들이 자비를 들여 개최한 것을 알고서야 격앙된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사회를 맡은 오수열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침착한 대응이 큰 역할을 했다.

주제발표와 토론자 발언에선 무안국제공항을 활용한 광주시·전남도 상생발전을 위해선 민간공항·군공항 통합 이전 필요성 및 당위성을 강조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소음 피해를 유발하는 군공항의 무안이전에 따른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방청객들도 의견을 밝혔다.

무안지역 한 사회단체 대표는 방청객 토론에서 “우리(무안군민)가 바보 천치가 아닌 이상 민간공항만 무안으로 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민간공항이 오면 군공항도 당연히 온다고 본다. 하지만 군공항이 오려면 어마어마한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한다”고 역설한 게 아직도 생생하다.

이 발언에 현장의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지금 한창 논쟁 중인 민간공항·군공항 동시이전 목소리가 무안주민들 사이에서 나왔고, 최소한 토론회장에서는 공감대가 형성된 듯했다.

이 목소리는 메아리를 형성하지 못했다. 광주시와 전남도가 이 토론회를 ‘너희들 일’로 치부한 게 주 이유였다. 전남도는 마지못해 토론자를 보냈다. 그렇다고 시·도가 스스로 공항 문제를 풀어가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 때부터인가는 무안군민들 사이에서 민간공항·군공항 동시이전은 금기어가 되다시피했다.

지역 현안을 앞장서서 풀어가야 할 광주시와 전남도, 무안군, 지역 정치인들이 공항을 매개로 한 상생을 등한시 한 결과다. 각자 입장만 주구창창 강조하면서 갈수록 꼬여버렸다. 특별법이 제정됐어도 별반 달라진게 없다. 한달만 지나면 해가 바뀐다. 그리고 시간은 또 흘러간다. 10년 후 무안국제공항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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