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경

제인 오스틴(1775.12-1817.7)은 영국의 여류 소설가다. 그녀의 책은 섬세한 시선과 재치있는 문체로 18세기 영국 중·상류층 여성들의 삶을 다루는 것으로 유명하다. 생전에는 그리 유명하지 않았으나, 20세기에 들어와서 작품 중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등이 여러 번 영화화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녀의 소설은 개인들의 일상생활에 한정된 소우주를 그려냈다. 누구보다도 세밀한 관찰력과 날카로운 비판적 시각으로 당대의 물질 지향적인 세태상과 허위의식을 풍자하면서 도덕의식을 예리하게 탐구했다. 단 여섯 편의 소설로 2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전 세계의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BBC가 ‘지난 천년간 최고의 문학가’를 묻는 설문 조사에서 셰익스피어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영란은행은 10파운드 지폐 인물인 찰스 다윈을 2017년 영국의 여류 소설가 제인 오스틴으로 교체했다. 당시 재무장관은 화폐에 여성 인물이 없다는 논란 속에서 이 사건을 영란은행이 이성과 감성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했다.

한 독서 모임에서 제인 오스틴을 초대했다. 그녀의 대표작 ‘이성과 감성’을 두고 열띤 설전이 펼쳐졌다. 오스틴은 소설에서 감성 과잉이 초래하는 개인이나 사회 전반의 위험을 이야기했다. 그녀의 소설 한 대목을 A가 읽고 말한다.

매리앤은 밤새 깨어 있었고, 그 대부분을 울면서 지샜다.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는 두통이 있었고, 말도 할 수 없었고, 요기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머니와 동기들의 마음을 매 순간 아프게 하였고 누가 위로를 해도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감성은 강력하도다!

“인간은 누구나 이성적인 면과 감성적인 면이 있습니다. 소설속 언니와 동생은 이성과 감성을 대표합니다. 이성적인 언니 엘리너는 차분하고 분별력 있습니다. 감성적인 동생 마리앤은 다혈질로 감정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나는 작가님이 어떤 유형의 사람이 바람직한 삶에 충실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오스틴은 웃어 보이며 각자의 취향대로 살 되 이성과 감성이 조화로운 삶이 좋지 않겠냐는 답변을 한다. B가 질문한다.

“IQ와 EQ가 떨어지는 정치인의 구호가 멋쩍게 다가옵니다. 담론의 장이 될 만한 정상적인 제안 범위(오버톤 윈도우)를 넘는 정책이 여야를 막론하고 등장하는 것은 왜인지요?”

오스틴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런 발언을 한다.

“이성과 감성은 사회적 수용성에 따라 변하지요. 미국이나 유럽에서 성소수자에게 결혼을 허용해주는 것을 상상이라도 했나요. 성소수자에게 결혼할 권리를 주는 생각에 대중이 익숙해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성소수자를 인정하는 조건하에 결혼 허용이라는 구체적인 토론의 관점으로 쟁점이 옮아가게 됩니다. 정치인이라면 달라진 대중의 정서를 늘 살펴야하죠.”

B가 정치인이 대중의 정서와 동떨어진 폭망하는 정책을 내놓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하자 오스틴은 웃으며 말한다.

“대중의 정서를 제대로 못 읽거나 잘못된 정서를 보편적 정서로 읽을 경우에는 국민이 난감해 합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감정으로 움직이기에 정치인은 표심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안고 삽니다. 정치경제학이 중요한 이유지요. 하지만 문제의 근본에 대한 진지한 이성적 고찰도 없이 가슴이 이끄는 대로 정치인이 경제나 사회문제를 생각하면 원칙이 무너집니다. 감성이 시대와 호흡하며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되지만 일관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변한다면 문제죠. SNS가 발달할수록 현대사회의 감성 쏠림현상은 심해집니다.”

B는 감성에 의존하는 인공지능(AI) 이야기를 꺼내며 감정경제로 치닫는 현상을 오스틴에게 상기시킨다.

“AI 스타트업 유니포어의 ‘영업용 Q’ 앱 아시나요. 비디오로 비언어적 신호와 신체 언어를, 오디오로 억양과 기타 데이터를 처리하여 ‘감정 스코어보드’를 생성합니다. 지난 4월 줌(ZOOM)은 화상회의 이후 주최 측에게 녹취록과 감정 분석을 제공하는 ‘영업용 줌 IQ’를 선보였다가 낮은 만족도로 호된 비판을 받았습니다. 감정을 읽으려는 AI의 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스틴은 어떤 사람들은 감정을 읽는 데 AI의 도움을 받는 아이디어를 좋아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반대의 견해를 보인다고 했다. 자신의 감정 상태가 기계로 판단되고 전달되는 게 싫다는 말이다. 감정인식 AI를 업계와 대중이 보편적으로 수용할 지를 충분히 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정인식 AI의 이점을 대중이 더 많이 인식하는 상황으로 미래가 펼쳐질 것을 점쳤다. 시중에 교감형 AI가 화제가 된지도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감정을 인식하고 생성하고 증강하는 AI는 점점 발전하며 인간을 닮아간다. 이들 AI는 청각적, 언어적, 시각적 특징(음성, 텍스트, 표정)뿐만 아니라 비언어적·추상적 정보(감정, 의도, 맥락)를 이해하고 생성하여 사용자와의 정서적 교감을 적절한 수준으로 관리하려 한다. 오스틴이 말한다.

“갈수록 채용에서 AI 면접관의 역할이 커질 것입니다. 이를 사용해 지원자의 진실성, 성실성, 동기를 이해하고자 할 거에요. 편향되지 않은 냉정한 AI에게 지원자가 잘 보여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감정인식 AI를 범죄 혐의자에 대한 심문 도구로 활용할 수도 있어요.”

감정인식 AI는 고객 서비스, 광고 평가, 안전 운전에도 응용할 수 있다. 일상적인 비즈니스에서 AI 앱은 통화나 화상회의에서 나타나는 타인의 감정을 온전히 전달하려 한다. 직장에서 지속적인 정신건강 상담을 제공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챗GPT가 사람보다 더 사람의 감정을 잘 이해한다는 말도 회자된다. 생성 AI의 침투 속도가 향후 아이 돌봄, 정신과 치료처럼 사람의 감정노동이 많이 소요되는 산업 영역으로 더 확대할 것이라는 예측도 제기된다. 오스틴은 소비자의 마음을 읽어주는 AI의 중요성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이성과 감성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녀는 이성이 사유의 제왕이라는 왕관을 썼다고 했다. 한편으로 이성에 대한 지나친 맹신은 그 전개 과정에서 수많은 역기능과 왜곡을 초래했다. 계량화, 수식, 이론을 통해 경제적 효율성을 자랑하던 자본주의는 대공황과 여러 차례의 위기라는 몸살을 앓았다. 인간이 이성의 힘으로 복잡한 현실을 타개할 수 있을 지에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생긴 지도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런 상황에서 독서토론회에 참여한 저마다는 오스틴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는 이성이 모든 것을 해결하리란 환상은 깨졌다고 합니다. 옳은 말이지만 이성의 힘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한 합리적 인간관은 한계가 있으나 사회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며 함께 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변화와 마주하고 있다고 표현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따뜻한 정감과 배려, 부드러움으로 대별되는 감성은 경쟁 사회에서 여유의 여백을 만든다. 성공한 자는 아무리 험난한 환경에서도 미래를 냉철하게 직시하며 뛰어난 정서적 능력을 발휘한다. 이성에는 지혜나 판단 같은 사유능력이 담겨 있지만 차가워 온기가 부족하다. 감성은 온기를 불어 넣고 의지와 결심을 다져 준다. 그래서 이성과 감성의 조화가 보다 참되고 성숙한 삶을 이끈다.

“이성과 감성은 대립하는 게 아니라 모든 인간 안에 공존합니다. 감성이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면 이성은 우리에게 길을 제시하는 지도의 역할을 합니다.”

누군가는 건축에서 이성의 근본원리가 건물의 홍석과 비슷하다고 한다. 홍석은 아치의 중앙마루에 있는 쐐기모양의 돌이다. 아치는 이 돌이 없다면 무게를 지탱할 수 없고 무너진다. 이 돌은 혼자서는 아치를 지지할 수 없고 다른 돌들도 제자리에 있어야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다. 뇌는 끊임없이 새로움을 찾는데 뇌의 감성 기능과 이성 기능이 조화를 이룰 때 창조의 결과물이 탄생한다. 오스틴은 마지막으로 독서토론에 참여한 이들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사람들이 이성보다 감성이나 직관을 더 효율적인 소통 방법으로 여기며 이성에 회의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감성과 직관에 모종의 호소력이나 설득력이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면 민주주의에 반하는 상황에 빠질 수 있어요. 생성 AI가 선거판에서 가짜 뉴스를 실어 나르는 사태도 당면한 문제입니다. 정부 정책을 보세요. 무언가 이슈가 생기면 그쪽으로 모든 민의가 집중되어 큰 파괴력을 낳기도, 비이성적인 실수를 만들기도 합니다. 인기에 영합해서 선거의 관전 포인트를 만든다면 선거의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감성을 자극하면 사회는 아름다울 것 같지만, 논리와 이성이 통하지 않으면 장기적 폐해는 국민이 집니다.”

오스틴은 수사와 이미지로 유권자의 감성을 움직이는 정치가 세력과 진영을 막론하고 각광받고 있는 상황에 경계를 표했다. 어떤 미래가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더 끌리는 미래를 선택하는 것은 감성이지만 선택하기까지의 증거를 판단하는 건 이성이라 했다. 그녀는 감정노동자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증진하는 발언으로 토론회를 마친다.

“감성경영은 기업의 브랜드가치를 올리고 직원의 충성도를 높이는 힘이 됩니다. 경제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합리주의란 피로가 도처에서 느껴진다면 무언가 보완이 필요합니다. 감성의 원리로 경제주체들의 기를 복 돋우고 근로자가 신바람 나게 일하며 사회전체에 정이 넘치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이러한 감성의 시너지는 사회전체적인 이성의 틀을 훼손하지 말아야 합니다.”

감성이 없다면 우리는 계속 잔류할 수밖에 없지만 이성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 데도 갈 수 없다. 오스틴은 이성과 감성의 하모니를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본 기고는 헤럴드경제와 제휴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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