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요수(광주연합기술지주 대표)

 

김요수 광주연합기술지주 대표

어느 술집의 옆자리에서 20년 지기 동창끼리 만나 푸념을 한다. 나는 왜 늘 이 모양 이 꼴로 사는가? 비슷한 생각을 갖고, 비슷한 환경을 버티는 사람끼리, 비슷한 이야기를 20년 동안 나누면서 삶이 바뀌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돌이 금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만남을 바꾸지 않고 삶을 바꾸기는 어렵다. 그 나물에 그 밥을 담아서는 바뀌지 않는다. 더러운 물에 깨끗한 물을 부으면 깨끗해진 척은 될지 모르나, 맑은 물이 되지는 않는다. 튼튼해지고 싶으면 튼튼한 사람을 만나고, 부자 되고 싶으면 부자를 관찰하고, 젊은 생각을 가지려면 젊은이와 어울려야 한다.

한해가 질 때 잘 살았는가 돌아보고, 새해가 올 때 잘 살겠다고 다짐을 한다. 지난해에 했던 반성과 지난해에 했던 다짐을 되풀이 한다면 게으른 삶이고, 바뀌지 않은 삶이다. 이렇게 살다 죽겠다고? 그렇다면 삶을 투덜거리지 않아야 한다.

으레 한해의 끄트머리에 ‘복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한다. 거저 복을 달라고 하는 건 거지 같은 마음보(심보)다. 내가 받고 싶은 복의 몸짓(실천)을 담아 다짐해야 맞다. 튼튼함을 바란다면 ‘날마다 골(만) 걸음을 걷겠습니다’처럼!

무엇보다 내가 무슨 복이 필요한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나랏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서민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물가를 잡겠다, 가난을 이기려는 사람이라면 돈을 어떻게 벌겠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다짐해야 한다. 그래야 그 복이 눈에 보이게 다가온다.

가르침도 그렇다. 답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답을 찾아가는 길을 함께 찾아야 맞다. 삶에서 답이 한 가지일리가 없고, 먼저 가본 사람의 길이라고 그것이 정답일리도 없다. 한 가지 답만 말하는 것이 ‘답정너’이고, 먼저 가봐서 안다고 말하는 것이 ‘곤쇠(꼰대)’다.

넘어졌거나 실패했을 때 ‘그 정도는 괜찮아~’, 말끝을 내리면서 어설프게 위로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가 넘어져서 얼마나 아픈지, 실패해서 얼마나 마음을 다쳤는지 헤아리지 못하는 일이다. ‘괜찮아?’ 말끝을 올리면서 그의 마음을 묻고 읽어서 함께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해주는 게 공감이고 위로다.

그런 사람이 대체 어딨어? 이렇게 비아냥거리는 사람은 만남을 바꾸지 못하거나 만남이 깊지 않은 사람이다. 말끝의 높낮이만 바꿔도,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위로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공감하는 사람을 따르니까.

머릿수보다 더 많은 음식을 만들면 ‘손이 크다’고 한다. 쓸데없이 낭비한다는 부정의 뜻을 담은 말이다. ‘그릇이 큰 사람’이라고 말하면 더 좋다. 넉넉하게 이웃까지 살피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긍정의 뜻이 담겼으니까.

허겁지겁 잘 먹는 사람에게 ‘먹을 탐(욕심)이 많다’고 말하기보다는 ‘먹을 복이 많다’고 하면, 먹는 사람도 기분 좋고, 듣는 사람도 따뜻해진다. 낯간지러워서 못하겠다고? 낯간지럽게 살면 웃음꽃이 피고, 마음도 편안하다.

전쟁은 신통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로 치른다. 전쟁 같은 우리 삶도 신통력으로 사는 게 아니라 사실로 산다. 이순신은 임진왜란 때 자신의 위치와 현상을 똑바로 보고 준비했다. 악조건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악조건을 바꿨다.

이순신은 원균처럼 임금에게 요구하지 않았고, 스스로 해결하여 승리했다. 군량을 확보하고, 화포를 만들었으며, 거북선이라는 맞춤형 배도 만들었다. 명량의 일자진, 한산도의 학익진이라는 죽음의 전투대형으로, 삶의 길을 열었고 나라 지키는 길을 열었다.

정서적 요소를 뺀 이순신은 신중하고 과감했고 냉철했다. 정치적 불운을 탈정치의 긍정으로 바꿨다. 전환의 리더십,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리더십이 나라를 지킨 것이다. 임진왜란을 겪고서도 바뀌지 않았던 어리석은 임금과 벼슬아치의 ‘알량한 정치’는 이순신이 죽고 불과 39년 만에 삼전도에서 머리를 찧으며 청나라에 항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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