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현(남도일보 사회부장)

 

오승현 남도일보 사회부장

아침부터 눈이 내렸다. 집안 청소를 하다 말고 거실 베란다로 달려가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맞았다. 눈이 갑자기 슬로우 모션으로 바뀌더니 옛 추억이 떠올랐다.

유년시절 겨울방학과 크리스마스가 시작되는 12월이 되면 마냥 좋았다. 친한 친구들과 서울에 사는 사촌동생들에게 보낼 성탄 카드를 직접 만들면서 가슴이 설랬고 성탄절에는 부모님께 받을 선물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즐거웠던 것은 긴 겨울방학 내내 할아버지 댁 뒷편에 사는 또래 친구와 담장 하나 사이로 사다리를 놓고 집을 오가며 놀았던 기억이다. 할아버지 댁 기와지붕 위 용마루장 위에 앉아 내리는 눈을 맞으며 깔깔거리는 게 겨울나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친구와 지붕 위에서 동네 구경을 하며 놀다 도둑고양이 마냥 지붕을 타고 내려오다 기왓장을 발로 밟아 깨뜨리고 할머니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하기도 수차례 였지만 그 시절 그 기억이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게 돼 아쉬움이 크다.

이렇듯 유년기의 연말연시는 많은 추억이 서린 행복한 시간이었다. 청소년기와 성인이 돼서도 연말연시는 많은 의미를 가져다주곤 했다. 어린시절과는 다르게 문명의 혜택으로 연하장 대신 간단한 텍스트문자와 SNS상에서 인사의 글을 대신 전한다. 직장인들은 연말 각종 모임이 즐비하고 회사 송년회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기 일쑤다.

그러나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만들어졌던 성탄절과 연말을 앞둔 세밑 분위기가 예전만 못한듯 하다. 대학시절만 하더라도 거리에 이 맘때면 울려 퍼졌던 캐럴은 성탄절이나 돼서야 방송을 통해 접하게 되는데 아쉬움으로 남는다. 연말은 다가왔지만 아직 10월쯤 된게 아닌가 하는 착각도 들 정도니까 말이다.

내가 너무 감성팔이에 젖어있는 것은 아닐까. 언제부터인가 완전히 달라진 연말연시 모습에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시대가 달라지면 문화도 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나 세밑의 풍경이 변했다고 해도 우리의 훈훈한 전통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연말연시가 어떻게 변했을지 알아봤더니 온정의 손길이 매우 줄어들었다고 한다.

광주·전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지난 19일 현재 광주와 전남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는 각각 29.6도, 28도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랑의 온도탑은 목표 모금액의 1%가 모일 때마다 수은주가 1도씩 오르며, 목표액이 달성되면 사랑의 온도탑이 100도를 가리키게 된다.

전남의 경우 이번 ‘희망2024나눔캠페인’ 목표액으로 105억5천만 원을 설정, 이날까지 29억 5천500여만 원이 모였으나 지난해 같은 기간 31.9도를 기록한 것과 비교해 기부 흐름이 주춤한 상황이다.

반면 광주는 지난해 20.8도를 기록한 것과 비교해 8.8도가량 높게 나타났으나 목표 모금액 달성을 위해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캠페인 기간이 내년 1월 31일까지임을 감안하면 아직 여유가 있다고 볼 수 있으나, 건설업과 제조업 등 지역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목표 달성 여부를 짐작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기부단체들 사이에서 이른 바 ‘큰 손’으로 불리는 지역 독지가들의 나눔 행보도 경기 위축으로 다소 위축됐다.

1억 원 이상을 일시 기부하거나 5년 이내에 납부를 약정한 개인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올해 신규 가입자는 광주가 11명, 전남이 12명으로 집계됐다. 2년 전인 2021년 광주에서 15명, 전남에서 27명의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나온 것과 비교할 때 큰 차이를 보인다. 코로나 여파로 기부문화 확산에 어려움을 겪던 때보다 상황이 더욱 악화된 셈이다.

2021년 60만3천 원으로 나타났던 1인당 평균 현금 기부액도 58만9천800원으로 약 2.2% 감소했다. 특히 월 600만 원 이상 고소득 가구의 1인당 현금 기부액은 2021년(89만6천900원)과 비교해 16.5% 감소한 74만9천200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현금 기부액이 줄어든 것은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올해 처음 있는 일이다.

통계청이 실시한 2023년 사회조사를 살펴보면 지난 1년간 기부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23.7%로, 코로나19 유행 전인 2019년(25.6%)보다 오히려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듯 세태는 변했어도 이 추운 12월에 주위의 어려운 이웃들을 보살피고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기부와 나눔의 문화는 변치 않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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