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현(전라남도의원·여수2)

 

서대현 전라남도의원(여수2)

“콧속도 새까맣고, 널어놓은 빨래와 창틀 사이에도 새까맣게 쌓여 있어요.”

광양제철소와 여수국가산단이 인접한 여수 온동마을 주민들의 하소연이다. 이들은 지독한 먼지와 악취에 시달리고 있다. 바람 따라 날아드는 먼지로 인해 일상생활은 물론 키우는 작물조차 먹지 못할 정도다.

‘경제적 풍요 속, 환경적 빈곤’이라는 상충적 어구가 말하듯 산단은 지역의 고용 창출과 경제발전의 원동력이었지만 공장에서 뿜어내는 발암물질과 분진 등으로 인한 온동마을 주민의 고통은 켜켜이 쌓여만 갔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환경부가 공개한 ‘2022년 굴뚝자동측정기기(TMS) 부착 대형사업장의 대기오염물질 배출 결과’에 따르면 광양제철소의 연간 배출량이 2만823t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2위인 포항제철소에 비해 6천546t이나 많은 배출량이다.

TMS란 전국 888개 사업장의 대기오염물질 7개 항목(먼지, 황산화물, 질소산화물, 염화수소, 불화수소, 암모니아, 일산화탄소)에 대한 측정값으로 광양제철소가 2019년부터 4년 연속 부동의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광양제철소는 생산능력 2천200~2천400만t 정도인 단일 규모 세계 최대로 알려져 있다. 1987년 가동 후 면적이 42%가 늘어 포항제철소의 두 배 크기로 성장하며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로 자리매김했다. 그 말인즉슨 많아진 생산량만큼 대기오염물질 배출량도 많아졌다는 뜻이다. 지난 40여 년간 광양제철소는 포스코가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로 자리매김하도록 일조했으나 광양엔 대기오염물질만 덩그러니 남았다.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이 높은 전남의 사업장 20곳 중 19곳이 광양과 여수지역의 사업장이다. 나머지 한 곳 장성 고려시멘트는 지금은 가동이 멈췄다. 산단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은 미래의 먹거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과는 별개로 상대적 박탈감을 주었고 지역민들은 오랜 기간 심각한 환경피해에 노출되는 결과만을 남겼다.

특히, 지난 2015년 여수국가산단의 입주기업들은 4년 동안 측정대행업체와 짜고 노후시설을 개선하기보다 적은 비용이 드는 불법 배출을 자행했었다. 허위 측정은 기업들이 20년 이상 관행처럼 이어져 왔었다 한다.

대기오염물질 자가측정 조작 사건 발생 후 행정기관, 시민단체, 주민 등으로 구성된 ‘민관협력거버넌스위원회’는 2021년 9월 23차례의 회의 끝에 겨우 환경관리 종합대책을 담은 권고안 9개 항을 도출해 냈다. 그러나 기업들은 환경오염 실태조사와 주민건강 역학조사를 본격적으로 논의했던 17차 회의부터 불참하는 등 주변 환경과 주민건강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도외시했었다.

사회적 관심이 멀어지고 사라질 만큼의 시간이 흐른 지난해 7월, 사건이 발생하고 4년하고도 7개월이 지나서야 전남도는 환경오염 실태조사 연구비 26억 원에 대한 기업 분담금 납부 확약서를 겨우 받아냈다. 계약 내용을 확실히 약속한다는 확약서만 받은 거라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여수산단 사건은 대기오염도 측정을 기업 자율에 맡기다 보니 실제로 주민들은 환경오염 물질에 얼마나 노출됐는지 제대로 된 정보조차 확인할 길이 없다. 그렇기에 주민이 직접 오염도를 측정하고 관련 정보를 받을 수 있는 민간감시센터를 설치해야 하지만 지자체 예산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석유화학단지의 세금 97%가 국세로 들어가는 반면, 지방세는 3% 정도밖에 안 돼 문제 해결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더욱이 크고 작은 환경 사고와 안전 문제가 빈번한 화학공장이 밀집해 있는 여수산단의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따라서 국회에 계류 중인 석유화학단지 주변 지역 지원에 관한 법안이 조속히 처리돼 석유화학단지 인근 주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더욱이 ‘발전소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으로 각종 지원과 혜택을 받는 발전소 주변 지역민들과 대기오염의 그늘에 가려진 석유화학단지 주변 지역들과의 형평성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할 것이다.

오랫동안 경제발전을 위한 희생을 감내해 온 산단 주변 지역민들의 기대를 국회가 저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또한 기업들도 단순 사회공헌활동이 아닌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고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ESG 경영을 강화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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