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태(남도일보 경제부장·국장대우)

 

김경태 남도일보 경제부장·국장대우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라는 격언이 있다. 독일의 법학자 옐리네크가 처음 한 말이다. 이 말은 도덕의 범위가 법보다 넓고, 법은 도덕 중에서 필수적이고 강제적인 부분을 규정한다는 의미다. 즉, 법은 사회에서 공동으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적 원칙을 표현하고 보장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법에서 강제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행위가 온당하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과 도덕의 관계를 정립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법과 도덕을 일치시키는 사람들은 처벌되지 않은 행위라도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면 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법에 의해 허용되는 행위라도 도덕적으로 상회상규에 반하는 것이라면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 등에 따른 건설 자재비 폭등의 여파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국 곳곳의 건설 현장에서 공사비 증액을 놓고 시공사와 시행사 간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광주지역에서도 이 같은 분쟁이 발생했다. 갈등을 빚고 있는 곳은 광주 광산구 ‘쌍암동주상복합신축공사’ 현장이다. 지하 6층~지상 39층 규모로 아파트 315세대, 영화관 5개관, 판매시설 등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코로나19 확산 직전인 2019년 9월 도급계약을 체결한 이 공사는 2020년 2월 착공에 들어가 오는 4월 완공 예정으로 현재 87%의 공정을 보이고 있다. 러-우 전쟁기간 동안 공사를 진행하면서 현재 250억원대 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에 시공사인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시행사인 롯데쇼핑㈜에 공사비 150억원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현대건설㈜과 광주지역 중견건설사인 브이산업㈜으로 구성됐다. 공사에 지역 건설사가 참여하고 있어 지역민들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수익은 커녕 적자가 발생하면서,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롯데쇼핑에 그동안 7차례 공문 및 방문을 통해 물가인상분을 반영한 공사비 150억원의 증액을 요청하고 있다. 천재지변에 준하는 상황에서 발생한 공사비 폭증에 따른 막대한 손실로 생존까지 위협받고 있기 때문에 공사 발주처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착공 이후 건설물가가 30%정도 상승한 악조건에서도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신의성실 의무를 다해 공사를 진행 중이지만 막대한 손실로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어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하소연이다. 더욱이 쌍암동주상복합 아파트 분양은 경쟁률이 690대 1을 기록할 정도로 성공을 거뒀기 때문에 일정 부문 ‘고통분담’을 하는 게 인지상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롯데쇼핑 측은 도급계약서상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내세워 추가 지원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물가변동 배제특약은 계약 시점 이후 물가가 상승해 건설 원가가 상승하더라도 준공까지 당초의 공사비를 고정한다는 내용이다. 민간이 발주한 전국 대다수 공사에는 이러한 특약이 포함돼 있어 건설사들의 추가공사비 요구는 수용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전국 곳곳의 현장에서 파열음이 생기자 정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민간건설공사에도 물가상승분을 반영할 수 있도록 가이드 라인을 마련했다. 또 공사비 분쟁 완화를 위한 조정 전문가 파견 제도도 도입했다. 시행사나 시공사가 기초자치단체에 전문가 파견을 신청하면 기초자치단체가 검토 후 광역자치단체에 전문가 구성 및 파견을 요청한다. 광역자치단체는 3~4명으로 구성된 전문가단을 파견해 갈등을 중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지는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다. 강제성이 없는 조치인 만큼 양측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힘들고, 입장 차이만 확인하는 과정에 그친다는 것이다.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롯데쇼핑에 국토교통부 건설분쟁조정위원회 중재를 신청할 테니 함께 참가해서 공사비 조정을 하자고 요구하고 있으나 롯데쇼핑은 이 마저도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롯데쇼핑은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롯데슈퍼를 거느리고 있는 대형 유통회사로, 지역 상생을 최우선시 해야 하는 책무가 있다. 물가변동 특약만을 주장하며 시공사야 죽든지 말든지 나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지역민심이다.

롯데쇼핑은 더불어 사는 상생과 지역경제의 부담을 덜어주는 차원에서라도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지자체의 공사비 중재 자문기구나 국토부의 분쟁조정위원회 중재 등 제도적, 법적 강제성을 논하기에 앞서 고통분담 차원에서 대승적인 합의가 최선책이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라는 격언은 지금 상황에서 되새겨 봐야 한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