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모든 인간사는 하나로 통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 이야기를 듣고 생각 해보니 나는 문자(文字)를 좀 배웠다고 자부하고 사는 지식인데도 실상은 저 꿩사냥 일자무식(一字無識)이라는 일서보다도 더 못한 것 아닌가 싶어졌다네!”

윤처사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허흠! 그 그런가!……”

조대감이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실상 조대감은 살아오면서 한 손에 채찍을 거머쥔 관리로 살아왔기에 그러한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었다. 더구나 무지렁이 백성의 기이한 행위 따위야 도무지 생각할 거리가 전혀 아니었다. 지위에 걸맞게 백성(百姓)들을 관리감시(管理監視)하며 철 따라 맛있는 것이나 잔뜩 얻어먹고, 공돈에 뇌물(賂物)이나 알게 모르게 챙겨가면서, 간간이 아니 시시때때로 주색(酒色)을 즐겨가면서 큰기침하며 살아온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무슨 하찮은 꿩 사냥꾼의 꿩 사냥 이야기라니, 도무지 시답잖은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따위 꿩이야 아전을 불러 큰기침 한번 하면 그날 당장 백성들을 들볶아 십여 마리 정도는 우습게 떨어질 게 아닌가! 그런데 저 윤처사는 일서라는 꿩 사냥꾼 사냥 일화를 말하며 깊이 감동하고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사실 조대감도 윤처사의 일서의 꿩 사냥 이야기를 듣고는 마구잡이로 꿩도 모르게 꿩을 잡는 일반 꿩 사냥꾼 이야기가 아니라 꿩에게도 살 기회를 주고 정정당당하게 사냥을 한다길래 무언가 남다르게 깊은 우주대자연의 인생철리(人生哲理)를 담고 있는 것만 같아 사뭇 긴장하고 들었던 것이었다.

“조대감 입장에서야 그깟 꿩 사냥꾼의 꿩 사냥 이야기가 ‘시시하다.’ 생각할 수도 있겠고, 빈부귀천(貧富貴賤)을 떠나 다 나름의 생활현장(生活現場)에서 득의득도(得意得道)하고 사는 사람들이 특별하게 있다는 것도 어쩌면 잘 알고 있을 것이네만, 대개 입신출세(立身出世)하여 잘난 사람들은 나 잘난 줄만 알지, 남 잘난 줄은 절대로 모르지. 막상 따지고 보면 항상 거만하게 우쭐거리고만 살아가는 그런 사람의 의식 수준이야 고작 세 살배기 어린아이 수준을 절대로 벗어나지 못하고 일평생을 마감하고 마는 것이네. 난 요새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네”

윤처사가 사뭇 장광설(長廣舌)을 늘어놓았다.

그 말을 들은 조대감은 순간 윤처사가 ‘너, 귀담아 잘 들어라!’ 하고 대놓고 말하는 것만 같아 슬그머니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또 ‘감히 누굴 가르치려고 들어!’ 하는 부아가 불쑥 속에서 뜨겁게 치밀어 오르려는 것이었다. 더구나 독한 술을 몇 잔이나 연거푸 마신 탓에 술기가 속에서 지금 자글자글 끓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막상 따지고 보면 윤처사의 말이 하등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다. 조대감 또한, 거만(倨慢)하고, 영악하게, 약자에게는 무지막지하게 표독하게, 강자에게는 한없이 비굴하게 지난 생을 살아왔지 않았던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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