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어어흠!……그그 그렇구만!……”

조대감이 잠시 숨을 고르고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러고 보면 저 윤처사는 자신이 선 자리에서 세상을 두루 살펴보고 성찰(省察)하며 살아왔다고 한다면, 조대감 자신은 아무 생각 없이 주어진 상황 그대로 그 상황을 옳다고만 무턱대고 받아들여 그 상황 속에서 오직 자신의 일취월장(日就月將)만을 바라며 살아온 것이 아닌가! ‘과연, 어느 것이 식자(識者)다운 삶일까?’ 하는 깊은 의문(疑問)이 문득 조대감의 뇌리(腦裏)를 번쩍 스쳐 가는 것이었다.

“조대감! 그러나 생각해 보니 자네나 나나 둘 다 틀렸네! 하하하하하하!……”

윤처사가 마치 조대감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라고 하는 듯 사납게 소리쳐 말하고는 크게 웃음을 터트리는 것이었다. 윤처사의 그 모습을 조대감은 흠칫 놀란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조대감은 얼른 눈빛을 풀고는 술 한잔을 재빨리 들어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순간 윤처사가 그런 조대감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더니 시 한 수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산이 높지 않아도(山不在高)

신선이 살면 유명한 산이고(有仙則名)

물이 깊지 않아도(水不在深)

용이 살면 신령하지 (有龍則靈)

이 방 비록 작고 누추해도(斯是陋室)

그 안에 사는 나의 덕 향기로울지니(惟吾德馨)

이끼는 점점이 계단을 기어올라 푸르고(苔痕上階綠)

풀빛은 발 안으로 비쳐들어 푸르다네(艸色入簾靑)

웃으며 이야기 나눌 덕망 높은 선비 있고(談笑有鴻儒)

함부로 오가는 무례한 무뢰배들은 없다네(往來無白丁)

장식 없는 거문고 줄 고르고(可以調素琴)

선현의 귀한 서책 펼쳐 든다네(閱金經)

요란한 음악 소리에 귀 어지러울 일 없고(無絲竹之亂耳)

관청 공문서로 수고로울 일도 없다네(無案牘之勞形)

남양 땅 제갈공명의 갈대집과(南陽諸葛廬)

서촉 양자운의 정자와 같으니(西蜀子雲亭)

공자께서도 이르시기를(孔子云)

군자가 기거한다면 그곳이 누추할 게 무엇이냐?(何陋之有)

윤처사는 당나라 때, 국운이 시들어가는 시절, 21세 때 과거에 과거급제하여 감찰어사를 지내다가 왕숙문, 유종원 등과 함께 정치개혁(政治改革)에 뛰어들어 실패하고, 한직(閑職)인 안휘성 통판으로 좌천되어 한 칸 방에 살며 쓴 시(詩), 유우석의 누실명(陋室名)을 읊었던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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