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경
조원경

미셸 오바마(1964. 1. 17)는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흑인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프린스턴 대학교에 진학해 사회학을 전공했다. 흑인학을 부전공으로 하며 사회문제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변호사직을 택하기 위해서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했다. 변호사로서 미국에서 여섯 번째로 큰 로펌인 시들리 오스틴(Sidley Austin)에서 일했다. 당시 직원 중에 흑인은 미셸과 그의 남편이 된 버락 오바마 두 사람 외에는 없었다.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실시한 여론조사(2022년)에서 재선 도전을 선언한 조 바이든을 10% 이상 제치고 민주당 후보군 중 지지율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당시 또 다른 여성 후보 카멀라 해리스와는 20% 내외의 격차로 압도적인 1위였다.

“오늘의 이 행사는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단지 행정부를 다른 사람이나 다른 정당으로 넘기려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워싱턴 D.C.에서 미국인 여러분에게 이양하는 날입니다.” 그의 말대로 워싱턴은 번창했으나 국민은 그 부를 나눠 갖지 못했다. 정치인들은 번영을 누렸으나 일자리는 줄어들고 공장은 문을 닫았다. 그는 기득권 세력이 지킨 건 자기 자신들이었지, 미국 국민이 아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녹슨 공장은 미국 곳곳에 묘비처럼 흩어져 있다는 말에 미국인들의 마음이 열렸을까? 지금으로부터 8년 전 그는 성공한 비즈니스맨, 베스트셀러 작가, 미디어 스타에서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이 됐다. 다시 2024년 미국 공화당 대선 유력주자로 뛰고 있는 그는 다름 아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8년 전 그가 한 다른 말을 상기해 본다.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외국의 산업을 풍요롭게 하는 대가로 미국의 산업을 희생시켰습니다. 다른 나라를 지원하는 동안 우리 군대는 슬프게도 고갈됐습니다. 우리는 다른 나라 국경을 지키면서 우리 자신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수조 달러를 해외에 쓰면서 미국의 인프라는 망가지고 썩어갔습니다. 우리는 다른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면서 우리나라의 부와 힘, 자신감을 상실했습니다.”

어쩌면 그는 당시 ‘총 맞은 것처럼’ 멍든 미국 대다수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했던 것일까? 8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 그의 입을 추적해 보는데 역시 그는 ‘America First’를 외치고 있다. 하긴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 바뀐 이후에도 미국 우위의 미중 패권전쟁은 지속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양보로 합의에 근접한 멕시코 국경 문제와 우크라이나 지원 협상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반대로 난관에 봉착했다. 백악관은 지난해 연말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예산이 소진됐다며 공화당에 지원 예산안을 통과시켜줄 것을 요구했다. 공화당은 이에 대해 멕시코 국경의 불법 월경자 단속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조처와 맞바꿔야 한다고 버텼다. 바이든 대통령이 단속 강화에 합의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면서 문제가 풀릴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나서며 합의가 무산될 가능성이 부각됐다. 국경 문제는 트럼프에게 매우 중요하다. 그는 문제가 실로 끔찍하다며 바이든 대통령을 비난하고 싶었기 때문에 공화당이 타협해서 그 문제를 해소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멕시코 국경 문제가 가라앉으면 대선 과정에서 이 문제로 바이든 대통령을 공격하기 어려워진다. 멕시코 국경 문제는 바이든 대통령의 인기를 떨어트린 주요 원인 중 하나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은 이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다며 바이든 전 대통령을 공격해왔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4년 1월 27일(현지시간)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캠페인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P]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4년 1월 27일(현지시간)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캠페인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P]

영국 대중지 데일리메일은 지난해 12월 27일 여론조사 업체 JL파트너스와 함께 미국 유권자 1000명에게 ‘두 사람이 무엇을 달성할지 연상되는 말을 한 마디로 말해 달라’는 내용의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연상 어휘는 ‘없음(Nothing)’이 가장 많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 연상되는 단어로는 ‘복수(Revenge)’가 최고로 많았다. 복수의 화신 다운 태도 때문일까? 그가 중국산 수입품에 일괄적으로 60% 관세부과를 공약을 검토 중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 재집권 시 이러한 관세폭탄이 현실화하면 미·중간 대대적인 2차 무역전쟁을 초래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중국의 불공정행위를 비난하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보다 강력한 무역정책을 펼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사실상 미국 유권자 표심을 얻기 위한 ‘중국 때리기’다. 그는 중국에 대한 최혜국 대우 폐지를 강조해왔다. 이 경우 중국산 수입품 40%에 대해 연방 정부 차원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중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로부터 생산된 제품이 미국으로 유입될 경우 10% 관세 일괄 부과를 공약으로 제기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수 세기 동안 보지 못했던 수준으로 세계 무역 질서를 뒤집고 파편화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으로 유입되는 중국산 공산품 가격이 관세만큼 상승할 경우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할 수 있다. 미국 일자리 감소를 촉발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영향력이 막강하다. 문득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인인 미셸 오바마의 미국 대통령에 대한 회고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세운 규칙대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압니다. 정정당당하게 이룬 성공이 아니라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과 겸손을 배웠습니다. 우리들의 성공 뒤에는 용기를 준 선생님으로부터 학교 청소를 담당하시는 분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기여를 가치 있게 여기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도록 배웠습니다. 이런 것들이 남편과 나의 가치이며, 우리 자녀에게 물려주려고 노력하는 것들입니다. 나는 남편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런 원칙 중 그 어떤 것도 바꾸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규칙이란 것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녀의 말대로 미국은 일관된 규칙을 갖고 상대를 대하는 나라일까라는 의문이 지금은 들 수 있겠다. 그녀는 이런 말도 했다. 그녀의 남편에 대한 일관된 신념을 볼 수 있어 입가에 미소가 생긴다.

“나는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임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나는 대통령 집무가 정말 어떤 것인지 가까이서 개인적으로 지켜보았고 대통령의 집무 탁자 위에 놓인 사안들이 얼마나 힘든 것들인지를 지켜보았습니다. 대통령으로서 많은 이들로부터 갖가지 조언을 듣지만, 최종 의사 결정의 시간이 다가오면 자신의 가치와 비전과 자신을 지금의 위치에 오게 한 경험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게 됨을 담담히 지켜보았습니다.”

세계적인 리더십 전문가인 존 맥스웰은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치 있는 삶을 말하는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람을 끌어당겨 행복과 성공으로 이끄는 힘을 ‘영향력’으로 정의했다. 인간으로 태어나 반드시 해야 할 한 가지는 살아 있는 동안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닐까. 규칙과는 거리가 먼 예측 불가능성의 리더십 아래 세상은 선한 영향력의 시대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공동체에 속해 살아가는 인간에게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제공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책임이다. 그 안정감은 가정과 직장, 사업체나 다른 공동체와 조직의 발전과 성공을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환경 조건이다. 존 맥스웰은 신뢰는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며 일관성을 통해 쌓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핀 키들랜드 당시 연세대학교 석좌교수는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경제 주체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정책 일관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정책 일관성과 경제성장’을 주제로 연 공개 강연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는 바람직하다고 여겼던 정책이 현재는 더 이상 최적의 정책이 되지 않아 정부가 정책을 수시로 바꾸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이런 경우 시장에서 정부의 신뢰는 무너지고 정책이 자주 바뀔 것을 염려한 투자자들이 지속적인 투자를 꺼립니다.”

그는 아르헨티나와 멕시코가 충분한 성장 잠재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세금 제도나 기업정책을 자주 바꾸면서 투자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와 반대로 아일랜드를 정책 일관성이 돋보이는 사례로 들었다. 비일관성이 경제적 규범으로 자리 잡는다면 미국발(發) 금융 이후 어려움을 함께 헤쳐 나가자는 국제공조의 정신은 박물관에서나 찾을 수 있겠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강대국 정부마저 각자도생과 힘의 논리로 지배한다면 우리는 이를 악물고 이 세파를 헤쳐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슬픈 현실을 자각하며 미셸 오바마의 말을 음미해 본다.

“어느 늦은 조용한 밤, 그는 책상에 앉아 국민이 보낸 편지를 읽고 있었습니다. 편지 중에는 암으로 죽어가고 있지만 보험회사에서 보장해 주지 않는다며 우울해하는 여성으로부터 온 것도 있고, 공약으로 내세운 것은 많았지만 실제 접하는 기회가 적은 것에 슬퍼하는 젊은이로부터 온 것도 있었습니다. 그는 내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이 사람들이 감내할 어려움에 대해 알지 못할 거야. 우리는 이런 것을 바로잡기 위해 계속 일해야 해.’라고요.” 미국에 대한 신뢰는 하루아침에 얻어진 게 아니다. 미국만 어려운 게 아니라 세계가 어렵다. 하나 된 세계에서 현재와 장래에 대한 객관적인 진단과 전망으로 일관성 있는 대책을 제시하는 거야말로 키들랜드가 제시한 신뢰받는 정부의 온전한 모습이다.
※본 기고는 헤럴드경제와 제휴해 게재합니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