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실패의 고난(苦難) 없이 승승장구(乘勝長驅)했더라면 어찌 그런 선비들이 대대로 애송(愛誦)하는 누실명(陋室名) 같은 명시(名詩)가 인류사(人類史)에 나올 수 있었겠는가?”

조대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 내 보기에는 경전(經典)만 죽도록 암기해 등과한 입신출세(立身出世) 고속가도(高速街道)를 달리려는, 그런 이기적(利己的)인 작자들에게는 유우석, 유종원 선생 같은 그런 득의득도(得意得道)의 순정한 경지는 절대로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일세! 식색지성(食色之性)에 깊이 빠져 살아가는 자들이 비단 무지렁이 무지한 백성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실은 높이 배웠다는 고상하다는 자칭 선비네 하는 고관작자(高官作者)들이 더욱 그러하니, 그런 작태(作態)를 유심히 관찰한 공자께서 ‘아아! 세상은 좋아지지 않겠구나!’ 하고 길이 탄식(歎息)을 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윤처사가 말을 마치고는 멀리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말을 들은 조대감은 그제야 윤처사의 의중(意中)이 무엇인지 바로 헤아려 알아챘던 것이었다. 윤처사는 유우석 선생의 누실명을 통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허투루 변명하려 한 게 결코 아니었다. 윤처사는 그런 자기수양(自己修養)이 전혀 안 된 하급족속(下級族屬)들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그러기에 조대감이 부득불(不得不) 윤처사를 자기 아들 옥동의 스승으로 삼으려 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윤처사가 말을 이었다.

“매란국죽(梅蘭菊竹)을 이른바 사군자(四君子)라고 하네! 그들 사군자는 비록 식물이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네. 식물도 그러할진대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그 인격(人格)에 향기(香氣)가 있어야 하네! 더구나 선비는 지극한 인품(人品)의 경지가 그윽이 배어나야 한다네. 그런데 말만 선비이고, 하는 생각이나 행동은 교활(狡猾)하기 그지없는 데다가 시정잡배(市井雜輩)보다도 더 못하다면 어찌 되겠는가? 그러한 고민을 바로 위수 강가에서 빈 낚시를 드리워야만 했던 강태공이 한 것이고, 또한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썼던 도연명 선생이 한 것일세! 먹고 살자니 폭악(暴惡)한 시대와 타협하여 도둑놈이 되어야만 하고, 그것을 거부하자니 식솔이 굶주려야 하니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냐? 어떻게 살아야 옳은 삶이냐를 늘 고민할 밖에 없는 삶, 고민할 줄 아는 사람, 그가 곧 선비였던 것이네! 참으로 어느 시대나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하고 살기가 참 어려운 것일세!”

윤처사가 말을 마치고는 술잔을 들어 마셨다. 강태공은 폭군 주왕이 지배하는 세상이 싫어 출사를 거부하고 위수에서 새로운 시대를 기다리며 빈 낚시를 드리우다가 결국, 무능하다는 이유로 아내에게 이혼을 당했고, 도연명은 시찰(視察) 나온다는 흉악한 상관에게 고개 수그리고 예를 갖추기 싫어 그 유명한 귀거래사를 쓰고 그 즉시 낙향하여 힘들게 농사를 지으며 간신히 자급자족(自給自足)하여 입에 풀칠만 하며 살면서도 자신의 인간 됨의 긍지(矜持)를 끝까지 지켜내지 않았던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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