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보낸 고흥 동강면 배경 수필집
맛깔스러운 전라도 사투리로 추억 담아
33편의 글마다 직접 그린 삽화 수록

 

박노해 시인

박노해 시인이 어린시절을 보낸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을 배경으로 쓴 첫 자전수필 ‘눈물꽃 소년(느린걸음)’을 출간했다.

33편으로 엮어진 수필은 한편 한편이 모두 동화처럼 펼쳐지고 우리는 잠시 어린시절을 소환하게 된다. 잔잔한 감동과 치유가 있는 책 읽기다.

오늘날의 박노해는 어린시절 할머니와 아버지, 마을 사람들과의 짧은 만남이 인생 전반에 정서적 기반이 됐다.

이 책을 통해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것도 실감할 수 있었다.

저자는 엄혹했던 독재 시절, 시퍼렇게 살아있는 시어로 시대와 영혼을 뒤흔든 시인이며 노동운동가와 민주화투사로 사형을 구형 받고, 감옥 독방에 갇혔던 혁명가다.

때로는 가난과 분쟁의 지구마을 아이들 곁에서 함께 울어주는 친구였으며 젊은이들에게는 길 잃은 시대에 빛을 찾아 걸어가는 어른이 되기도 했다.

이번 책을 통해 박 시인은 ‘소년’의 얼굴로 돌아왔다. 눈물꽃 소년은 그가 처음으로 전하는 ‘어린 날의 이야기’다. 남도의 작은 마을 동강에서 자라 국민학교를 졸업하기까지, ‘평이’라고 불리던 소년 시절의 성장기를 그렸다.

그는 어두웠고 가난했고 슬픔이 많았던 시절이었지만 “내 마음에는 어둠이 없었다”고 말한다.

박 시인은 “이제야 나는 내가 받은 위대한 선물이 무엇인지를 실감한다”며 “그것들이 어떻게 나를 키우고 내가 되게 했는지 나는 이야기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책은 응축된 시어가 아닌 생생한 산문으로 곱고 맛깔스러운 전라도 사투리가 정감 어린 글맛을 선사한다. 다독다독 등을 쓸어주는 엄니의 손길 같은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덧 이 작은 아이가 웃음과 눈물로 우리의 마음을 휘젓는다.

온몸의 감각을 깨우는 듯한 문장 사이로 그가 뛰놀던 산과 들, 바다가 펼쳐지고, 계절 따라 진달래 해당화 동백꽃 향기가 스며온다. 흙마당과 마을 골목, 학교, 장터, 작은 공소와 그를 키운 풍경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그려진다.

33편의 글마다 수록된 삽화는 박 시인이 직접 그린 연필그림으로, 글의 풍경 사이를 여행하는 듯 따스함과 아련함을 더한다. 갈수록 독해지고 사나워지는 세상에서 이토록 순정하고 기품 있는 이야기는 마음을 정화해 준다.

박노해 지음/느린걸음 펴냄

박 시인은 “인간에게 있어 평생을 지속되는 ‘결정적 시기’가 있다. 그 첫 번째는 소년 소녀 시절이다”며 “인생 전체를 비추는 가치관과 인생관, 세계관의 틀이 짜이고 저 광대한 세상을 걸어나갈 근원의 힘을 기르는 때, 아직 피지 않은 모든 것을 이미 품고 있던 때이다”고 말한다.

이 책의 배경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모자란 게 많고, 마음껏 읽을 책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자연과 인정과 시간은 충분했고 순정한 흙가슴의 사람들이 살아있었다.

죄를 지은 청년을 보듬어 다시 살아갈 힘을 주던 할머니. 일곱 살에 아버지를 여읜 평이에게 ‘동네 한 바퀴’를 돌게 하며 씩씩하게 나아가게 한 이웃 어른들. 부당한 일에 “아닌 건 아닌디요” 함께 맞서며 같이 울어주던 동무들. “더 좋은 거 찾으면 날 가르쳐 주소잉” 늘 몸을 기울여 학생들의 말을 들어주던 ‘수그리’ 선생님.

세상 만물을 지고와 흥겨운 입담을 풀어놓던 방물장수. 말이 아닌 삶으로 가르치며 잠든 머리맡에서 눈물의 기도를 바치던 어머니. 작은 공소의 ‘나의 친구’ 호세 신부님. 낭만과 멋과 정감이 흐르던 동네 형과 누나들. 외톨이가 되었을 때 “나랑 같이 놀래?” 한 편의 시로 다가와 연필을 깎아주던 첫사랑의 소녀까지. 못 배우고 가난해도 인간의 기품이 있고, 서로를 보살피는 관계가 있고, ‘참말’을 할 수 있는 진실한 삶을 살아낸 사람들. 그 속에서 자라난 한 소년의 일화가 담백하고 풍요롭게 펼쳐지고,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가슴 시린 풍경이 그리움과 소망을 불러일으킨다.

하루하루 독해지고 사나워지고, 노골적인 저속화와 천박성이 영혼을 병들게 하는 지금, 더없이 순하고 다정한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폭풍을 잠재우고 맑고 깊은 힘을 채워준다.

박 시인은 희망과 용기의 ‘눈물꽃’을 건넨다. 눈물꽃 소년은 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살아낸 박 시인이 깊은 성찰을 통해 길어 올린 기억의 유산이기도 하다. '언제부턴가 너무 빨리 잃어버린 원형의 것들, 인간성의 순수'를 일깨우며, 오래도록 품어온 ‘희망의 불씨’를 이야기에 담아 건넨다.

무엇이 한 인간을 빚어내는지, 부모와 아이, 스승과 제자, 이웃과 친구는 어떠해야 하는지, 오늘의 나를 만든 순간들은 무엇인지, 지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눈물꽃 소년은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소중히 돌아보게 한다.
 

‘눈물꽃 소년’에 수록된 박 시인이 직접 그린 연필그림.

◇박노해 시인은…
박노해 시인의 본명은 박기평이다. 박노해라는 필명은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이라는 뜻으로 군사독재 정권 당시 금서 조치에 감시를 피해 쓴 이름이다.

그는 1957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나 고흥, 벌교에서 자랐다. 16세에 상경해 노동자로 일하며 선린상고(야간)를 다녔다.

1984년 27살에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펴냈다. 이 시집은 군사독재 정권의 금서 조치에도 100만 부가 발간되며 한국 사회와 문단을 충격으로 뒤흔들었다. 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으로 알려졌다.

1989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을 결성한 그는 1991년 7년여의 수배 끝에 안기부에 체포돼 24일간 고문을 당했다. 검찰 측은 ‘반국가단체 수괴’ 죄목으로 사형을 구형했다.

사형을 구형받고 최후진술에서 그가 “당신들은 나를 죽일 수는 있어도, 나의 사랑은 결코 꺾을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던 모습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울림을 남겼다.

박 시인은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34살에 1평 남짓한 감옥 독방에 갇혔다. 이후 1993년 옥중시집 ‘참된 시작’과 1997년 옥중에세이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펴냈다.

1998년 7년 6개월 만에 석방된 박 시인은 민주화운동가로 복권됐으나 국가보상금을 거부했다.

그는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권력의 길을 뒤로 하고, 2000년 비영리단체 ‘나눔문화’를 설립해 ‘생명 평화 나눔’의 사상과 실천을 이어갔다.

박 시인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후인 2003년 “울고 있는 아이들 곁에 있어라도 주고 싶습니다”라며 이라크 전쟁터로 떠나 평화활동을 펼쳤다.

또 2006년 레바논 내 최대 팔레스타인 난민촌 아인 알 할웨에 ‘자이투나 나눔문화학교’를 세운 그는 꾸준히 난민 아이들을 지원해왔다.

팔레스타인·아체·쿠르드·버마 등에서 평화나눔을 이어가던 박 시인은 현장의 진실을 전하고자 카메라를 들었다. 낡은 흑백 필름 카메라로 기록한 사진을 모아 첫 사진전 ‘라 광야’展과 ‘나 거기에 그들처럼’展(세종문화회관)을 열었다.

2012년부터는 나눔문화가 운영하는 ‘라 카페 갤러리’에서 박노해 사진전을 상설 개최했다. 22번의 전시 동안 39만 명이 관람했다.

이와 함께 지구시대 좋은 삶의 원형을 담은 ‘다른 길’展(2014년)을 개최하며 ‘다른 길’을 펴냈다. 2019년 ‘하루’를 시작으로 ‘박노해 사진에세이’ 시리즈 6권, 시 그림책 ‘푸른 빛의 소녀가’, 경구집 ‘걷는 독서’,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등 다수의 책을 발간했다.

올해는 감옥에서부터 30년간 써 온 책, ‘우주에서의 인간의 길을 담은 사상서’를 집필 중이다.

박 시인은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 살아가는 삶의 공동체 ‘참사람의 숲’을 꿈꾸며, 오늘도 시인의 작은 정원에서 꽃과 나무를 기르며 새로운 혁명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정유진 기자 jin1@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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