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웅미술관, 김석출 재일작가 초대
5월 26일까지 ‘두드리는 기억’ 전시
회화·삽화·아카이브 등 200여점 출품
재일 인권·광주민주화운동 등 주제 작품
국내 첫 개인전·회고전…남다른 의미

 

2007년 작 ‘되돌아 보는 유관순’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재일디아스포라 김석출 작가. /정희윤 기자 star@namdonews.com

일본의 식민통치에 저항한 3·1운동이 105주년을 앞둔 가운데 광주에서 민족 의식을 기반으로 한 전시가 마련됐다.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은 재일작가 김석출 작가를 초대, 전시 ‘김석출-두드리는 기억’을 오는 5월 26일까지 개최한다.

하정웅미술관 디아스포라작가전은 해외에 거주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가를 초대해 그의 작품세계를 조명하고 예술을 통한 역사와 문화 교류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됐다.

올해는 일본 오사카에서 활동하고 있는 재일작가 김석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조망한다.

특히 이번 전시는 김석출 작가의 국내에서의 첫 개인전이자 전 생애를 아우르는 첫 회고전이다. 김 작가의 회화 57점·삽화 48점·아카이브 자료 100여점 등 200여점이 넘는 작품과 자료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김 작가의 가족사는 그야말로 민족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 징용공으로 끌려간 아버지에게서 태어났으며, 재일 교포로서 가난과 차별을 겪어야 했다.

그의 형제·자매는 총 9명인데,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에 태어난 누나 2명은 할머니 손에 키워졌다. 작가가 한국에 남겨진 누나들을 만난 것은 40여 년이 지난 후였으며, 갓난쟁이 일때 가족과 헤어졌던 누나들 또한 어머니의 얼굴을 그때서야 볼 수 있었다.

김석출 作 ‘1980.5.27.’

이처럼 김석출 작가는 일제강점기 시대의 이주와 해방, 조국의 분단, 가난과 차별, 가족의 이산 등 재일 교포 역사의 전형적인 삶을 경험했다.

작가의 파란만장한 삶은 민족의식을 기반으로 한 현실참여 경향의 작품활동으로 이어졌다.

1966년부터 붓을 든 작가는 청년기엔 재일교포로서 겪은 차별과 재일의 인권, 민족교육, 북송선 문제, 베트남 전쟁과 조국의 정치 상황 등 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작업을 펼쳤다. 1980년에는 현지언론을 통해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을 접한 뒤 예술가로서의 사명감에 대해 각성하며 20여년 간 ‘5월 광주’ 시리즈를 제작했다.

또한 정치적·이념적 경계를 넘어 재일작가들을 포괄한 단체 ‘고려미술회’를 김재형과 함께 창립했으며, ‘고려미술회 연구소’ 설립을 통해서 재일작가 육성에도 힘썼다.

당시 재일작가라는 이유로 전시장을 구하기조차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작품 발표의 기회를 제공하고 재일작가를 육성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2000년대 부터는 3·1운동 열사 ‘유관순’ 연작과 함께 분단된 조국의 통일과 화합을 기원하는 작품 등을 제작했다.
 

김석출 作 ‘1980.5.18.광주’

전시 ‘김석출-두드리는 기억’는 시대 흐름별로 ▲재일디아스포라, 김석출의 생애 ▲미술에 입문과 재일의 인권▲ 광주의 기억 ▲되돌아보는 유관순 ▲과거와 현재를 잇다 등으로 구성 10대 후반부터 최근작까지 60여년의 화업 인생을 펼쳐보인다.

1974년 작 ‘김지하’는 유신독재시절 저항 운동의 중심에 있던 김지하 시인이 체포돼 수갑을 찬 모습을 담았다. 같은해 발표한 작품 ‘열사’ 또한 흰 치마저고리에 수갑을 차고 있는 여성을 그렸다.

이 두 작품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독재정권에 저항하다 체포된 인물의 표정과 자세다.

김지하 시인은 수갑을 찬 손을 보이는 당당한 모습이며, 하얀 한복을 입고 수갑을 찬 여성 또한 반듯이 앉아 담담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이는 조국의 민주화운동에 대한 작가의 지지와 공감을 투영한 것으로, 비록 조국과 떨어져 있지만 그의 시선을 늘 조국의 정치 상황과 사회 문제에 향하고 있으며 조국의 안위를 기원하고 있음을 이야기 한다.

‘5월 광주’ 시리즈 중 작품 ‘1980.5.27’은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는 청년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손목이 묶여 있는 화면 중앙의 남성은 체포됐음에도 불구하고 인체의 구조와 신체의 비율, 근육 표현 등이 균형감 있게 표현, 조형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김석출 회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김석출 作 ‘김지하’

특히 김 작가의 유관순 연작은 기존의 유관순과는 사뭇 다르다.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퉁퉁 부은 얼굴 대신 17살 꽃다운 나이의 유관순 열사를 만나볼 수 있다.

아카이브 자료 또한 눈에 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생활했던 김석출 작가가 80년 5월 광주의 상황을 접하게 된 당시의 일본 신문 스크랩 자료들이 전시된다.

전시된 신문 스크랩 자료는 언론이 통제됐던 국내 상황과 달리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즉각적으로 보도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일본에서 발행된 5·18민주화운동 연구 서적 10여 권도 전시돼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평가와 연구 활동도 엿볼 수 있다.

김석출 작가는 “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잘 알면 자기의 넋을 지킬 수 있다. 때론 모진 차별 등으로 일본 귀화도 고민했지만 어디서 사는가보다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귀화하지 않았다”면서 “이번 전시를 통해 타국에서도 자신의 고향을 한국이라고 생각하는 교포들이 많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바람을 내비쳤다.

김석출 作 ‘돌아갈 수 없는 다리와 재일3세(꿈)’

전시를 기획한 김희랑 하정웅미술관장은 “디아스포라로서의 삶과 민족의식에 기반을 둔 김석출 작가의 예술세계에는 늘 조국의 안위와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며 “재일 작가로서 삶이 녹록하지 않았지만, 늘 시대의 불의·부조리를 주시하고 예술가로서 소명을 다해 왔다”고 말했다.

한편, 하정웅미술관 디아스포라작가전 ‘김석출-두드리는 기억’은 오는 5월 26일까지 진행되며, 개막식은 29일 열린다.
/정희윤 기자 star@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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