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남도

우리나라에 알려진 나방의 종류가 4천여 종에 이르다보니 나방의 이름도 정말 다양하고 헷갈린다.

나방과 접하면서 느꼈던, 그리고 지금도 뼈저리게 통감하고 있는 사실이 국명과 쉽게 연상이 되질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방을 소개할 때 왜 이름이 어렵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는다. 그럴때마다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보고 느낀대로 이름을 붙이면 쉬울텐데….

이른봄도 아닌 2018년 4월 25일, 어김없이 용추계곡을 오른다. 무등산에서 가장 많은 애벌레를 만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주먹밥 하나, 목을 축일 수 있는 물만 있으면 종일 애벌레를 만날 수 있는 곳이기에 좋다.

통신케이블 공사를 하면서 많이 훼손되었고, 탐방객들이 늘어 좋은 서식환경은 많이 사라졌지만 지금도 추천할 만한 최고의 장소가 아닐까 싶다. 이런 저런 애벌레와 눈맞춤하면서 발길을 옮기는데 덩굴식물 잎 뒷면에 교묘히 숨어 있는 녀석이 보인다. 연두색 몸통 숨구멍위로 길게 흰색의 가느다란 줄이 있다. 이 줄이 없으면 애벌레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잎과 색이 똑같다. 방해를 받으면 머리를 가슴쪽으로 구부리고 꼼짝하지 않고 있다. ‘나 애벌레 아니다’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2018년 5월 11일, 영광 불갑사 계곡에서 녀석을 다시 만났다. 나뭇가지에 다소곳이 붙어 있는데 옆으로 흰 가로줄이 선명하게 보인다. 배다리가 4개인 것으로 밤나방 애벌레다. 녀석도 역시 머리를 가슴에 붙이고 있다. 이른봄밤나방 애벌레다. 이른봄도 아닌데 왜 이름에 이른봄이 들어가 있는 것일까 무척 궁금하다. 녀석도 아직 중령 애벌레다. 더 자라 종령이 되면 갈색으로 변하며 앞가슴등판은 흑갈색으로 변하지만 모습은 변하지 않는다.

2년전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 충남 아산으로 이사를 와 지금은 천안아산역옆에 살고 있다. 이곳의 나방들을 보기 위해 옮긴건 아니지만 기회라 생각하며 열심히 발품을 팔고 있지만 생각보다 애벌레 보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 산이 낮고 농가에 가까이 있어 환경적 영향을 많이 받는 것같다.

2023년 4월 30일, 증평의 좌구산에서 이른봄밤나방 애벌레를 만날 수 있었다. 청미래덩굴에 교묘히 몸을 숨기고 있다. 처음 가 본 산이라 많은 기대를 했었는데 물빛긴꼬리부전나비 애벌레, 얇은날개겨울가지나방 애벌레 등 몇몇 애벌레를 만난게 전부다. 물빛긴꼬리부전나비 애벌레를 본 순간 ‘신종 나방애벌레를 만났구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는데 집에 와서 찾아보니 나비 애벌레여서 조금은 실망했지만 그래도 좋다.

이른봄밤나방 애벌레는 식물을 가리지 않고 먹으며, 흔히 보이는 종 이지만 먹이식물과 색이 비슷하여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게 일쑤다.

2023년 5월 8일, 망경산에서 만난 녀석은 곧 종령이 될 것같다. 흔한 종이라 여기 저기서 보인다. 조금만 지나면 갈색으로 변할 것이다. 다 자란 녀석은 흙속에 고치를 만들고 번데기가 되어 10월에 우화한다.

어른벌레는 가슴 윗면, 앞날개 전연, 중실에 가락지 모양의 무늬와 콩팥무늬가 있는데 적갈색을 띤다. 시정부는 황백색이며 전체적으로 약간 어두운 느낌이다. 곤충의 분류는 대부분 어른벌레의 형태를 기준삼아 이루어진다. 따라서 국명도 이 기준에 의해 정해질 것 같은데 이른봄에 보이는 나방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름에 ‘이른봄’이 들어 갔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3월이다. 멀리 남녘에선 꽃소식이 들려온다. 아직 바람은 쌀쌀하지만 봄은 벌써 곁에 와 있는 듯 하다. 애벌레들과 눈맞춤할 날이 기다려진다.

글·사진/이정학 숲 해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