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잠깐!”

조대감이 글을 막 읽으려는 순간 윤처사가 무엇이 퍼뜩 생각이라도 난 듯 소리쳤다. 조대감은 글에서 눈을 떼고 윤처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 무언가?”

“으음! 조대감, 내 생각해 보니 혹여 일이 그르칠까 싶어 그런다네!”

윤처사가 그렇게 말을 하며 조대감을 바라보았다. 조대감은 윤처사가 이 상황을 빠져나갈 마지막 수를 두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사실, 다른 사람도 아닌 죽마고우(竹馬故友)의 아들을 맡았다가 자칫 잘못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두고두고 탓을 들을 게 두렵기도 하거니와 또 그 아들이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았을 때는 참으로 난감(難堪)할 것일 것이었다. 남의 자식을 그것도 친한 친구의 아들을 맡아 교육한다는 것이 어찌 말처럼 쉬운 일이겠는가?

“어! 어흠! 사실, 우리 아이는 내가 보건대 윤처사가 말하는 천하명마(天下名馬)의 기질(氣質)을 타고난 것이 전혀 아닐세! 나 들으라고 다들 좋은 말들을 하기도 하는데, 어찌 그 아비가 그 아들의 상태를 모르겠는가! 요는, 가당치 않게 천하대사(天下大事)를 좌지우지(左之右之)할 천하명마를 조련(調練)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겨우 자기 처신(處身)이나 하며 집안 망해 먹지 않고, 윗사람 공경(恭敬)하고 아랫사람 자애(慈愛)롭게 보살피는 사람 노릇 하며 살도록만 바라는 것일세!”

조대감은 혹여 다 된 밥에 코 빠뜨릴까 두려워 한껏 겸양(謙讓)의 자세를 갖춰 말했다. 아마도 윤처사는 아들 옥동보다도 실은 아비 되는 조대감의 실재 속마음이 무엇인가 궁금한 것인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비 되는 자의 끝없는 욕망(欲望)으로 인해 아들 교육이 그르쳐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을 윤처사는 익히 잘 알고 있었던 것이리라!

“허흠! 사람 노릇이라? 이같이 어려운 세상에 참으로 어려운 말씀이로구만! 나 같은 한심한 사람에게 금쪽같은 자식을 믿고 맡겼다가 사람 노릇은커녕 훗날 제 밥그릇 깜냥조차 못하고 살면 어찌할 것인가?”

윤처사가 말했다. 순간 조대감은 속으로 분명 윤처사가 저 말을 하고 싶었다는 걸 직감(直感)했다. 역시 윤처사였다. 윤처사는 훗날 막다른 고비에 닥쳤을 때, 자신의 책임(責任)을 회피(回避)해 갈 마지막 날벼락 같은 명수(名手)를 생각해 두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니 윤처사 입장에서는 천 번 만 번 심사숙고(深思熟考)할 밖에는 없을 것이었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피치 못할 잘못으로 인해 전체를 잃어버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조대감 또한 세상일이라는 게, 더구나 자식이라는 게 절대로 뜻대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조대감이 입맛을 ‘쩝!’ 다시며 입을 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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