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화(전남도의원)

 

오미화 전남도의원
오미화 전남도의원

인간이라면 누구나 존엄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농민의 권리는 ‘UN 농민권리선언’이 채택된 지 5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제자리인 듯싶다.

2018년 12월 유엔 회원국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채택된 농민권리선언은 농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한 노력을 촉구하는 국제인권규범으로 매우 중요하나, 당시 기권을 했던 우리 정부는 여전히 농민권리선언 이행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농업생산비 폭등으로 농민 부담이 가중되고 기후변화와 국제정세 영향으로 농업소득 또한 곤두박질치고 있는 가혹한 현실에서 농민들이 체감하는 위기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지난해 11월 국회의원과 정부 및 농업관계자 등이 참석한 ‘유엔농민권리선언 제도화 방안 마련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는 기후위기 시대의 농민을 보편적 권리를 지켜내기에 가장 취약한 계층으로 인식했다. 농민은 기후변화로 인해 입은 피해로 안전을 보장받기 어려우며 생산비 폭등과 농업소득 감소에 따라 농민의 생존권이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또한 토론회 발제를 맡은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이 공개한 ‘기후위기와 식량위기 시대에 필요한 농민권리 실태조사’에 따르면 농민 중 76.7%가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농업에 대한 국가의 책무에 대해서는 73.3%가 높은 수준의 책임이 필요하다고 응답하고 있다.

더불어 농촌 환경을 파괴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인 각종 대규모 개발사업과 환경오염 시설이 농민의 권리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를 조사하고 농민권리를 보호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농민권리영향평가 도입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기후변화와 식량위기 속에서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려면 제도화된 정책이 일관적으로 추진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농민의 권리가 인정받아야 함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 사회는 농민권리선언의 제도화와 당위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농가 수는 102만2천 가구이며, 농가인구는 216만5천명으로 이 중 여자가 남자보다 2만7천명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우리는 남성보다 여성의 평균수명이 높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여성농민은 농사를 지으며 가사, 육아, 돌봄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가부장적 색채가 짙은 농촌은 농지 소유와 농산물 판매 소득을 가장(남성)이 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문제이다. 지금의 농민수당은 농업경영체 세대원이 아닌 세대주에게만 지원되고 있어, 대부분 세대원으로 등록된 여성농민은 농업정책 지원사업이 배제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체 농업인구에서 51%가 여성농민이며, 이 중 81%가 50세 이상의 고령인 점에서 농민수당과 각종 면세혜택을 받지 못하는 여성농민에 대한 제도적인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또한 대개 전업농이라 농사만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워 농업생산 이외의 소득 활동이라도 하게 되면 농업경영체 등록에서 탈락하거나 기존 등록자는 자격이 상실된다. 농업인 확인서 발급 규정에 따르면 1년에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더라도 국민연금법상 사업장가입자나 국민건강보험법상 직장가입자가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농가의 농업소득은 매년 7% 이상 감소해 버는 돈은 줄고, 일손은 떠나는 어려운 현실의 농촌에서 농민이라는 이름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여성농민들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고 농업경영체의 공동경영주로서 동등한 권리와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고 많은 전문가들은 말한다.

부부는 일심동체라지만 농민수당을 세대주에게만 지급하는 건 불합리하다. 경영주로서 똑같은 권리를 부여하는 것을 법적으로 명시하고 각종 지원이 뒤따른다면 여성농민의 권리가 향상될 것이다.

농민수당은 농업과 농민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해 농민의 삶의 질 향상과 농업농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지원하는 것이다. 공동으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배우자라는 이유로 자격에 제한을 둔다는 건 농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여성농민들의 어려움이 해결되고 사회적 인식이 개선돼 농민으로서 공정한 대우를 받는 세상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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