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으음! 언젠가 아들 문제로 골치가 아프다던 어느 선비께서 나에게 묻더구만, 벼슬하는 아들, 돈 잘 버는 아들, 정말 듣기 좋은데, 벼슬과 아들, 돈과 아들을 따로 떼어놓았을 때, 어느 게 더 좋냐고 묻더구만, 그때는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이라 생각했는데, 이놈 세상사(世上事) 살아보니 그것이 아니었네. 오늘, 그 질문이 생각 나는구만.”

“그렇지! 본래 속 썩이는 일로 깊은 고심(苦心)을 해봐야 인생이 깊어지는 법일세! 샘물이 나오지 않을수록 더 깊이 파 들어가는 법이지! 그러고 보면 내 속을 썩이는 사람이 최고의 인생 스승인 게야!”

윤처사가 말했다.

“으음! 옳으신 말씀이야! 윤처사가 어제 말한, 유우석 선생의 누실명(陋室名)에서 보듯 산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살면 유명한 산이고(山不在高 有仙則名), 도연명 선생처럼 매일 밭에 나가 일을 하면서도 밥도 국물도 배불리 못 먹었고(簞瓢屢磬), 겨울에도 베옷을 입고 떨어야 했지만(絺緙冬陳), 자신의 올곧은 뜻을 꿋꿋이 지키고 산 까닭에 역사이래(歷史以來)로 수많은 선비의 존경을 받는 것 아닌가! 더구나 꿩 사냥꾼 일서처럼 사색(思索)하고 수신(修身)하며 살면 되는 것 아닌가! 내 살아보니 그럴듯한 지위를 가지고 의식(衣食)은 남부럽지 않게 풍족(豊足)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그 안에 갇혀있는 삶이 되고 말았다는 것일세! 오늘 새벽 나는 그것을 깨달은 것일세!”

조대감이 진지한 얼굴로 윤처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윤처사가 잠시 입을 꾹 다물고 조대감을 바라보았다. 누구보다도 자존심 강한 조대감이 저런 말을 다 하다니 속으로 깜짝 놀란 것일까? 다른 때 같았으면 이리 뜸을 들이고 들면 버럭 화를 내며 방문을 박차고 나가고도 남았을 터인데, 자식의 앞날을 위하여 부득불(不得不) 인내(忍耐)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한 것일까? 분명, 조대감 입장에서는 매우 절실한 것은 확실했다.

“조대감도 잘 아시겠지만, 불가(佛家)의 남선종(南禪宗) 초조(初祖) 혜능대사(惠能大師)가 5조 홍인대사(弘忍大師)를 처음 만났을 때 ‘너는 영남 출신인 데다가 오랑캐 출신인데 어찌 부처가 될 수 있겠느냐?’고 했을 때 ‘부처의 성품(性品)에 남북이 있을 리 없고, 차별(差別)이 있을 리 없다!’ 말하지 않았는가! 사람은 어디에 살든 사는 그곳이 자기중심(自己中心)이 되는 것이지 지방과 중앙이 따로 있을 수 없고, 또 남북이 따로 있을 수 없지 않은가! 내 별다른 뜻은 없고,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잘못된다면 우리 사이에 금이라도 갈까 두려워 신중(愼重)하게 생각을 해보자고 한 것일세! 조대감! 내 뜻을 잘 아시겠지?”

윤처사가 얼른 말을 하며 조대감을 바라보았다. 좋은 친구 사이에 상대는 매우 심각하게 대하는데, 자칫 뜸이나 잔뜩 들이면서 성가시게 중언부언(重言復言)하는 모습으로 비치면 아니 될 것 같아서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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