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태(남도일보 경제부장·국장대우)

 

김경태 남도일보 경제부장·국장대우

2012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아무르(Amour)’는 음악가 노부부 조르주와 안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아무르는 프랑스어로 ‘사랑’이라는 뜻이지만 영화는 노년의 질병과 간병,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묘사했다. 행복하고 평화로운 노후를 보내던 노부부는 어느 날 아내 안느가 갑자기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되면서 하루아침에 삶이 달라진다. 남편 조르주는 아내를 헌신적으로 돌보지만, 하루가 다르게 몸과 마음이 병들어가는 아내를 바라보면서 결국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선량한 사람들도 오랜 간병 끝에 살인에 이르게 된다는 비극적인 결말이다.

간병 살인은 단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자주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특히 부모님이 고령인 5060세대에게 간병은 남의 얘기일 수 없다. 고령화사회 진입과 맞벌이 부부 증가로 간병·육아 등 돌봄 서비스 수요는 급증하는 반면, 사람 구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비용 부담도 일반 가구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돌봄서비스 인력난·비용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요양병원 등에서 개인 간병인을 고용하려면 지난해 기준 월 370만원 정도의 비용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됐다. 6년 전보다 50%나 뛰었다. 65세 이상 고령 가구는 소득보다 본인 등의 간병비가 1.7배 많고, 전체 가구 소득 순위의 중간에 있는 40~50대 자녀 가구도 벌이의 60% 이상을 부모 간병비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간병 지옥’, ‘간병 파산’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부모 요양만이 아니다. 자녀를 양육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도 상당하다. 육아 도우미 비용도 264만원으로 30대 가구 중위소득의 5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돌봄 서비스의 노동력 수급 미스매치도 큰 문제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돌봄 분야 인력 부족 규모는 2022년 19만명에서 2032년 38만~71만명, 2042년 61만~155만명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됐다. 반면 보건서비스 노동 수요는 2032년 41만~47만 명, 2042년 75만~122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20년 후에는 공급이 수요의 30% 수준에 그치게 된다.

돈도 돈이거니와 간병인조차 구하기 어려워 가족 구성원이 간병에 나서게 되면 해당 가족이 노동시장에서 빠져나가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연령별 평균 임금을 적용하면 2022년 19조원에서 2042년 46조~77조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됐다.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직접 키워도 경제활동 인구 감소, 여성 경력 단절, 저출산 가속화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악순환 구조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지금까지 간병은 개인의 문제로 치부돼 왔다는 것이다. 이 짐을 국가가 덜어줘야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됐지만 늦은 대응으로 우리는 여전히 ‘가족 간병’의 굴레에 갇혀 있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국민 간병 부담 경감 방안’을 발표해 기대감을 갖게는 한다. 간호사가 직접 돌보는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를 확대하고, 요양병원 간병비를 국가가 지원하는 내용이다. 올해 7월부터 시범사업을 거쳐 2027년 본격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 대책은 안 보인다. 요양병원 간병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했을 때 매년 최소 15조원의 건보 재정이 소요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건강보험 재정은 이미 위기상태여서 보험료를 인상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간병 지옥’ 해방은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은 이번 보고서에서 간병 문제 해법으로 ‘외국인 인력 활용’을 제시했다. 외국인 고용허가제 대상 업종에 돌봄 서비스업을 추가하고 최저임금을 상대적으로 낮게 설정하자는 게 골자다.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할 만하다고 본다.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국인 우리나라는 임금 등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할 수 없고, 업종별·지역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 방식을 도입하려면 노동 관련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 공론화 과정에서 최저임금 외에도 내국인 일자리 잠식이나 인종차별, 불법체류 등 예상되는 부작용도 미리미리 따져봐야 할 것이다.

집안에 돌봐야 할 환자가 생기는 것은 ‘재난’이다. 작가 필립 로스는 소설 ‘에브리맨’에서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대학살이다”라고 육체적 고통을 표현했다. 정부와 정치권은 간병비 건보 적용 재원 조달 대책을 비롯해 재가서비스 확대, 외국인 인력활용 등 구체적인 정책과 대안 마련을 서두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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