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갑자기 그 외마디 소리를 들은 말고삐를 잡고 가던 종자가 말이 놀라 뛸까 봐 고삐를 감아 잡아당기면서, 집이 아직 멀었느냐고 조대감이 묻는 줄 알고 깜짝 놀란 얼굴로 돌아보며 말했다.

“아아! 아! 아이구! 예예! 대대……대감 나리! 아! 아직 멀었습니다요!”

“으으 응! 응!……그그, 그래, 그래!”

조대감이 머쓱한 표정으로 얼버무리며 말했다. 사람이 매사(每事)를 빈틈없이 깊이 사색하며 일희일비(一喜一悲)를 삼가고 신중(愼重)하고 경중(敬重)이 대해야 하거늘 울었다, 웃었다, 성냈다를 반복하며 이리저리 덤벙대기 일쑤라면 아무래도 성현(聖賢)의 종자(種子)와는 거리가 멀 것이었다. 조대감은 먼 산야를 바라보며 가다가 이윽고 눈을 감아 버리는 것이었다. 이 가벼움과 오만(傲慢)과 독선(獨善)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아무래도 이놈의 양반(兩班) 뼈다귀와 제법 밥술이나 떠서 잘 나간다는 명문가(名門家)라는 이름에서 온 것이고, 그리고 천하사(天下事)에 도무지 달통(達通)하지도 못했는데, 그만 떡! 하니 과거급제(科擧及第)하고만, 어중간한 문자속량(文字贖良)으로 칼자루 거머쥐고 관직(官職)에 나가 백성 위에 사나운 범처럼 군림(君臨)하며 호령(號令)하고 기름진 밥 따뜻이 얻어먹은 그것에서 분명 기인(基因)한 것이리라! 그러고 보면 아무래도 이번 생(生)에서는 사람 되기 틀린 것이 아닌가!

“허허흠! 틀렸어! 틀렸어!”

조대감은 마상에서 흔들흔들 고개를 가로저으며 ‘틀렸어!’ 소리를 또 한동안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자신 보다 잘나지도 않았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이룬 것 하나 없는 윤처사 앞에만 서면 초라해지고 작아지는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윤처사가 자신의 창자 속까지 모조리 꿰뚫고 있다는 생각이 조대감을 엄습(掩襲)해 왔던 것이었다. 신언서판(身言書判)에 의식주(衣食住), 겉으로 비기기야 조대감이 윤처사 보다야 천만배(千萬倍) 더 월등(越等)해 보였지만, 그 생각하는 질은 아무래도 조대감 자신이 모자라는 것만 같았던 것이었다.

‘어허흠! 그저 사과든 배든 복숭아든 생긴 대로, 하는 대로 두고 보지 못하고 왜 자꾸 빗대어 견주고 키재기를 하려는 것일까? 내 이놈 못된 그런 속성부터 먼저 버려야 하는데……’

조대감은 또 문득 그런 생각에 빠져들었다. 어려 서당에 다니면서부터 누가 더 잘하나? 극심한 경쟁 속에서 살아온 버릇이 이렇게 평생 버릇이 되어, 서열(序列)에 얽매이는 비틀어진 삶을 살아온 탓이리라! 어려서 분명 윤처사의 글공부는 조대감을 능가(凌駕)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윤처사는 세속가치(世俗價値)로 따져본다면 일찍이 전선(戰線)을 자진포기(自進抛棄)한 낙오병(落伍兵)이 되어 버렸고, 조대감이 번쩍 추월(追越)하여 드높이 떠올랐지 않은가! <계속>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