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남도

[특별기획=이정학의 ‘신비한 자연속으로’][170] 극동쐐기나방
 

완연한 봄 기운이 몰려온다.

지난 월요일‘ 행여나 놓칠세라’ 부랴 부랴 구석에 팽개쳐두었던 무거운 카메라를 들쳐메고 인근의 망경산을 찾았다.

변산바람꽃과 노루귀를 만나기 위해서다.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노루귀의 솜털이 정겹다. 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견디고 살포시 꽃봉우리를 피우고 있다. 아직 나무들은 새잎을 피우지 않았지만 잔뜩 부풀어 세상을 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머잖아 애벌레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빠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뒤에 힘겹게 몸을 누인 가냘픈 노루귀들의 모습이 애잖하다. 그래서 될수 있으면 야생화 보러 다니는걸 자제하고 있는데 봄이 오면 어쩔 수 없나보다.

나방의 애벌레를 구분하는 방법 중 은신처를 만들지 않으며 몸에 털이 별로 없는 애벌레로 배다리가 없고 대개 몸에 돌기가 많은 애벌레군이 있다. 쐐기나방과 애벌레들이다.

우리나라에는 전에 소개한 적이 있는 흰점쐐기나방을 비롯해 23종이 알려져 있다. 몸에 날카로운 돌기가 많아 우리가 흔히 쐐기라 부르는 나방의 애벌레다.

2013년 9월 14일, 하동 의신계곡에서 연두색 몸통의 윗면 가운데 흰색 줄이 있으며 군데군데 붉은 점이 있는 럭비공같은 애벌레를 만났다.

버드나무로 보이는 가지에 곧 떨어지기라도 할 듯 위험하게 붙어 있다.

움직임이 거의 없다. 극동쐐기나방 애벌레다. 보통 8월에 관찰되는데 녀석은 9월인데도 보인다. 잎 뒷면에 붙어서 천천히 움직이며 먹는 극동쐐기나방 애벌레는 몸통 둘레에 날카로운 돌기가 많다. 찔리면 많이 아플 것 같다.

2019년 8월 30일, 광주천에서 녀석을 다시 만났다. 역시 버드나무잎에 바짝 붙어있다.

마치 자기가 나뭇잎인 것처럼. 흰점쐐기나방, 꼬마쐐기나방, 꼬마얼룩쐐기나방 애벌레 등은 이런 독특한 모양새다.

긴 타원형의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외모에 웃음이 절로 난다. 2019년 9월 14일 함평 대동면에서 만난 극동쐐기나방 애벌레는 색상이 연노랑색으로 눈에 확 띈다.

주변 나무에서 떨어진 것인지 바위 위를 느릿 느릿 움직이며 안전한 은신처를 찾아 움직이고 있다. 오랫동안 녀석이 이동하는 것을 하염없이 쳐다본다. 부디 좋아하는 먹이식물을 찾아가기를 빌면서….

극동쐐기나방 애벌레는 층층나무, 참나무류, 벚나무 등 여러나무를 먹고 산다. 유충시기는 8월이며, 길이는 25㎜ 정도다. 다 자란 애벌레는 흙속에 들어가 단단한 흑갈색 탁구공 같은 고치를 만들고 번데기가 된다. 직접 사육하면서 관찰해보지 않아 탁구공같은 번데기를 본 적은 없다. 기회가 되면 도전해 보고 싶지만 이듬해 5월에 우화하는 만큼 녀석을 잘 관리할 자신이 없다.

극동쐐기나방은 오래전인 2014년 7월 23일 안동호반자연휴양림에서 만났다.

전국숲해설가협회 대표자 회의에 참석해 첫날 일정을 마치고 이곳에는 어떤 나방들이 있는지 주변을 돌아다니다 녀석을 만난 것이다.

안동은 내륙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지만 특별히 다른 녀석들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불을 밝히고 찾아 본 것은 아니기에 단정지을 수 없지만 말이다. 남도지역 이곳 저곳에서 애벌레를 관찰했으나 어른벌레를 만나지 못했는데 극동쐐기나방을 유일하게 본 곳이니 가끔씩 그날의 기록들을 보곤 한다. 앞날개는 옅은 회갈색 바탕에 검은 비늘가루가 흩뿌려져 있다.

⅔부근에 안쪽으로 기울어진 횡선이 1개 뚜렷이 있고 횡선 안쪽은 폭넓게 회백색을 띠는 극동쐐기나방.

쐐기나방이 주는 무서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애벌레에서 느꼈던 것처럼…

글·사진/이정학 숲 해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