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일(통계청장)

 

이형일 통계청장

시간의 효율성을 중시하고 분초(分秒) 단위로 쪼개 사용하는 현상인 ‘분초사회’가 올해의 트렌드 키워드로 부상했다. 가성비에 시간의 개념을 더한 극한의 ‘시성비’를 중시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는 의미다. 이들은 영화나 드라마도 1.5배나 2배속으로 시청하고 이마저도 시간이 아까울 경우 유튜브 요약 영상을 찾아보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책 내용을 5분으로 압축해 제공하는 ‘쇼트북’ 서비스도 인기를 끌고 있다.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와 인터넷, 모바일 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분초사회의 등장 배경이다. 기업들도 이런 트렌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기술을 활용해 개인의 취향과 성향에 맞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소비자가 시간 투자를 줄이도록 노력하고 있다. 통계청도 올해 초거대 인공지능(AI) 기반 통계 챗봇 서비스를 도입해 원하는 통계를 쉽고 빠르게 찾을 수 있게 함으로써 통계 이용자들의 시성비를 높일 계획이다.

분초사회에서 시간 복지도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시간 복지는 개인이 자신의 시간을 보다 유의미하고 만족스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다양한 정책과 실천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유연근무제, 휴가정책 확대, 공공시설과 서비스 접근성 향상, 육아 및 가사 지원, 교통 및 인프라 개선 등도 모두 분초사회를 살아가는 국민에게 시간적 여유를 제공하고 국민의 행복 증진을 위한 시간 복지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통계청은 3월부터 ‘2024년 생활시간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1999년 최초로 조사를 시작한 이래 올해 6회째다. 전국 1만2천750개 표본 가구를 대상으로, 10세 이상 가구원에게 2일 동안 10분 간격으로 시간 일지를 작성하게 해 하루 일과와 시간 배분 등을 파악한다. 올해는 특히 처음으로 봄에 해당하는 3월 조사를 추가해 사계절에 맞춰 4회 조사를 하여 계절별 시간 활용과 생활양식을 충분히 반영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생활시간조사 결과는 각종 연구와 기업의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는 데에 활용할 수 있으며 고령사회 대응, 일과 가정 양립 및 취약계층 사회복지 등 증거에 기반한 정부의 촘촘한 정책 수립의 기초자료로 활용된다. 특히 이번 조사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가속되고 있는 일상의 디지털화 현상을 통계로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조사로 분초사회의 등장 배경을 통계적으로 확인하고 미래 트렌드의 방향을 파악할 수 있는 기초자료가 될 것이다.

시간은 우리에게 제한된 자원이지만,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가치는 크게 확대될 수 있다.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도와 소득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이스털린의 역설’을 주창한 리처드 이스털린 교수도 몇 년 전 발간한 저서 ‘지적 행복론’에서 행복 수준을 높이는 확실한 방법은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행복의 가성비는 가정, 건강 등 ‘가치 있는 시간’ 투자에 있다는 의미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고령화 등 다양한 문제 해결, 국민의 행복 가성비를 높일 시간 복지 정책 수립, 그리고 분초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국민과 대한민국의 효율적이고 가치 있는 시간 활용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 줄 이번 생활시간조사에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린다.

※본 기고는 헤럴드경제와 제휴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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