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진석(정치부 차장)

 

심진석 남도일보 정치부 차장

정부가 의대정원 2천명 증원 정책을 발표하면서 불어닥친 혼란의 작은 바람이 요즘엔 허리케인급 정도로 커져버렸다. 사람으로 치면 작게 곪은 자리에 생긴 ‘염증’이 전신으로 퍼진 것과 유사할 터이다.

아는사람은 알겠지만 염증이 온 몸을 덮치면 폐혈증 등 다양한 증상이 동반되고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결국 죽는다. 한국사회 분위기가 현재 딱 그렇다. 삶과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느낌이다.

혹자들은 이번 사태가 막 공론화 될 무렵부터 이미 예견됐다며 호들갑이다. 한국 사회가 낳은 기득권 중 가장 말이 통하지 않으면서도 명확하고 확고하게 조직화 된 의사집단과, 한번 결정하면 어지간해선 뒤로 물러나지 않는 기조인 현 정부가 소위 맞짱을 붙었으니 누군가는 무릎을 꿇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이란 불안감에서다.

이는 곧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전국 일선 상급종합병원에 재직 중이던 전공의들은 사직행렬에 나섰고, 의대생들과 교수들은 학교문을 박차고 나갔다.

광주·전남도 심상치 않다. 전남대·조선대병원 전공의 수백명이 병원을 떠났다. 조선대학교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전체 교수 161명 중 응답자 129명(78%)이 ‘자발적인 사직서 제출’에 찬성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대학교도 강경입장의 교수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정도 되면 이번 의대정원 2천명 증원, 또 이를 반대하는 의사집단이 서로간 내세운 ‘한국 국민을 위한 것’이란 명분은 이미 상실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싸움도 규칙을 갖고 해야 한다. 규칙이 없는 싸움은 그저 폭력일 뿐이다. 정부와 의사집단간 이번 싸움이 딱 그렇다. 최소한의 지킬 선까지 무너졌기 때문이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의사들은 의사가 되기 전 히포크라테스 선서라는 것을 한다고 한다. 여기에 환자를 포기하면서까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라고 나와 있는지는 모르겠다.

일반의, 수련의(인턴), 전공의(레지던트), 전문의, 전임의(펠로우). 의사들의 교육과정에 맞춰 의사집단에서 자기들을 구분해 부르는 용어다. 호칭에 따른 서열화도 명확하다. 마치 군대 계급장같다. 명령체계도 확실하다.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집단이기에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다.

병원에서 마주한 흰 가운을 입은 사람은 환자들에겐 다 똑같은 ‘의사’일 뿐이다. 그리고 환자들에겐 이들은 너무도 소중한 사람이다. 하얀가운이 주는 무게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정부 역시 귀를 더 열어야 한다. 정치는 곧 소통이다. 소통을 잊는다면 미래도 없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만 터지는 작금의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선 곤란하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