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어머니가 그것을 보고 보리 베던 낫을 밭둑에 ‘휙!’ 던져놓고 사납게 소리치며 달려가 아이들을 말렸다.

그러나 이미 파헤쳐버린 감자알은 아이가 주머니 안에 챙겨 담았다. 어머니는 그것까지는 눈감아 버렸다. 아버지는 그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날 저녁 이웃 밭에서 훔쳐 캐온 감자로 감자 된장국을 끓였다. 구수한 냄새가 모처럼 물씬 온 집안에 가득 찼다. 밥상에 떡하니 감자 된장국이 오르자 아홉 개의 수저가 불 번개 튀듯이 오고 갔다. 굶주림과 먹는 것, 그 사이에 인간의 삶은 서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는 그 숭고(崇高)하다는 도덕(道德)이 설 자리는 어디냐?

아이들이 허겁지겁 도둑질해서 캐온 감자 된장국을 떠먹느라 여념(餘念)이 없는데, 그 된장국 사발에 그날 저녁 밥상에 단 한 번도 수저가 가지 않는 자가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였다.

여기서 할머니의 이야기는 끝이 나고 말았다. 어린 조대감은 그 이야기를 듣고는 왜 할머니가 그것도 대가(大家)의 할머니가 가난하고 볼품없는 천민(賤民)의 하찮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인가 하고 사실 마땅찮게 생각했었다. 감자 몇 알이야 그 까짓것 끼니때마다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항상 배고픔에 시달리는 맨 하위(下位) 천한 인종(人種)의 게걸스러운 감자, 그것도 철없는 어린 것이 도둑질한 감자 이야기 도무지 가슴에 와닿지 않았던 것이었다.

조대감이 살아오면서 스무 살쯤 나이를 좀 먹어 그 이야기가 언뜻 생각이 난 것은 그저 그 아버지 어머니가 먹을 것을 풍족(豊足)하게 주지 못한 죄책감으로 아이들 먹으라고 수저질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주리더라도 너희들이라도 배불리 먹으라 하고 말이다.

그런데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그것도 말 안 듣는 옥동을 기르면서 생각이 어느 순간 번쩍 틔던 것이었다. 그것은 온몸이 차갑게 식어 싸늘하게 굳어 경직(硬直)될 만큼의 깊은 충격이었다. 아니! 도무지 말도 입 밖에 나오지 않을 만큼의 전율(戰慄)이었던 것이었다. 그 깨달음과 각성순간(覺醒瞬間) 조대감은 한동안 넋이 나가 말을 하지 못했다.

‘아아! 할머니의 그 이야기! 그 깊은 속뜻을 아직껏 알지 못했다니! 아아! 역시 나는 둔하고 수준이 낮은 놈이야! 아아아!……’

조대감은 늘그막에 가슴을 치며 속 깊은 비명(悲鳴)을 질렀다.

만약 그날 저녁 아버지 어머니가 남의 밭에서 도둑질해서 캐온 감자 된장국을 맛있게 먹었다면, 그 아홉 아이의 열여덟의 어린 눈빛이 시퍼렇게 살아 지켜보는 그 밥상에서 만약 아버지 어머니가 그 감자 된장국을 ‘아! 맛나다!’ 하고 떠먹었다면 과연 어찌 되었을 것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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