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이나 미술품 등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을 보면, 다른 건 몰라도 이웃 중국이나 일본의 그것에 비해 소박하다는 점은 널리 인정되고 있는 것 같다. 아닌게 아니라 문외한인 필자의 눈으로 보더라도, 우리 것은 섬세한 귀족미보다는 소박한 생동감이 그 특성인 듯 싶을 때가 많다.
이런 특성은 긍정적인 눈으로 보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강조한 것으로 높이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반대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의 정신이나 손길이 세밀하고 정교하게 파고들지 못했다는 해석도 가능해진다. 문화나 문명이 인간정신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라면, 결국 섬세한 분석을 그다지 중요시 않는 게 우리 문화의 한 성격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신 우리는 전체로써의 현상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길 좋아하는 듯하다. ‘분석’이라는 말보다 ‘종합’이라는 말이 애용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지 모른다.
‘분석’이라는 말은 일상적인 우리말로 ‘따지기’다. 사물이나 현상을 섬세하게 따져 들어가는 일이 ‘분석’이다. 그렇다면 우리 현실, 우리 마음은 어떨가?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따지는 걸 싫어한다. 그것이 한국인의 심성으로 느껴지는 일이 너무 잦다. 예컨대 우리는 “따지는 것은 딱 질색”이라는 말을 주위에서 흔히 듣는다. 여성이 남성을 대할 때, 특히 미혼여성이 신랑감을 생각하면서 높은 점수를 주는 덕목도 “너무 따지지 않고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물론 이 말속에는 나름대로의 긍정적인 미덕이 숨어 있다. 이런 현상은 심지어 따지는 일이 본업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예외없이 나타난다.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섬세한 것 대신 포괄적인 것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만연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수해가 또 발생했다. 똑같은 피해가 매년 같은 때, 심지어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다. 비만 오면 물바다가 되는 세상. ‘맞은 데 또 맞을 줄’알면서도 왜 주먹질을 피하지 못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더 답답한 것은 맞은 데를 계속 맞고도 아직 덜 맞은 듯한 표정을 짓는 우리의 둔감함이다.
“천재가 아닌 인재”라는 말만 떠돌아다닐 뿐, 또다른 ‘인재’를 막기 위한 구체적이고 착실한 실천은 눈에 띄지 않는다. 원인을 섬세하게 따지고, 예방대책을 치밀하게 강구하기도 전에 많은 사람 머릿속에서 이번 수해는 또 잊혀져 가고 있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번 수해 역시 삼풍백화점 참사나 성수대교 붕괴, 화성 씨랜드 화재사건과 마찬가지로, 섬세한 것을 존중하지 않는 우리 모두의 성격에 그 원인이 있다는 점이다.
이제 ‘설마’ ‘대충대충’ ‘빨리빨리’라는 말과 생각은, ‘혹시’ ‘그래도 틀림없을까’ ‘천천히’라는 ‘확인의 심성’으로 바뀌어야 한다. ‘신경과민’에 가까운 섬세한 손길이 구석구석 뻗어져 있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 ‘안전한 사회’ ‘맞은 데는 두번 다시 안 맞는’사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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