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亞 고려인과 동질성 교감…‘글로벌 광주’ 방향성 제시
‘나는 고려인이다’ 뮤지컬공연단
현지 고려인사회에 큰 반향 불러와
지역 문화예술인 힘으로 창·제작
‘지역+아시아’ 문화콘텐츠 가능성

광산구·호남대도 교류 활동 ‘주목’
인재양성·공동발전 상호협력 모색
고려인사회 매개 광주 지향점 시사
“진단 통해 지역사회 역할 모색해야”

“내가 아직은 고려인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카자흐스탄(카자흐) 알마티시고려인민족중앙 김 데니스 부회장이 ‘나는 고려인이다’ 뮤지컬을 관람한 뒤 밝힌 소감이다. 김 부회장은 지난 2일 카자흐 알마티 한국교육원 대강당에서 열린 광주고려인마을과 호남대가 공동 창·제작한 ‘나는 고려인이다’ 공연이 끝난 뒤 무대에 올라 이렇게 밝혔다.

‘나는 고려인이다’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후원으로 광주 고려인마을극단 ‘1937’과 호남대학교가 공동 창·제작한 뮤지컬이다. 고려인의 시련 극복의 역사를 스토리텔링화해 음악과 무용, 노래로 표현한 작품이다.
 

광주고려인마을과 호남대학교는 올해 한국-카자흐스탄, 한국-키르기스스탄 수교 30주년을 맞아 고려인의 역사성 및 현재적 의미를 현지 동포들과 교감하고자 2년여의 준비를 거쳐 기념사절단을 구성해 ‘나는 고려인이다’ 뮤지컬 작품을 지난 2일 카자흐스탄, 6일 키르기스스탄에서 무대에 올려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사진은 카자흐스탄 알마티 한국어교육원 대강당에서 공연을 마친 뒤 ‘나는 고려인이다’ 출연진과 현지 출연진이 함께 무대에 올라 ‘고려아리랑’을 합창하는 모습. 알마티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고난·시련 극복 이주사에 ‘눈물’

김 부회장의 발언에는 한민족 동포이면서 카자흐 국민으로 살고있는 자신의 정체성을 놓고 고민이 많았음이 담겨있다. 고려인 4세인 그는 카자흐에서 나고 자랐다. 언어도 러시아어와 카자흐어를 배우고 사용한다. 한글은 전혀 못한다. 하지만 그는 공연을 보고는 ‘나는 고려인이고,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조상을 가지고 있다’는 걸 자각했다.

비단 김 부회장뿐이 아니었다. 알마티에서 공연을 본 대부분의 고려인들은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할아버지, 부모들이 나라 잃은 국민으로서 먼 이국땅에서 고난을 겪어야 했던 삶에 가슴이 시렸고, 시베리아 강추위를 이겨내고 새롭게 다시 일어섰을 땐 기쁨의 눈물이 났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겪은 고난과 시련은 곧 자신들의 삶이었다.

4일 뒤 키르기스스탄 수도 부슈케크에서 열린 두번째 공연도 같았다. 알마티의 감동이 미리 국경을 넘어 온 까닭인지 공연장인 국립드라마극장의 500여 객석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어린 아이부터 아들 손을 잡고 온 백발의 어르신까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임 스베틀라나 페트로브나 (83·여)씨도 객석에 있었다. 아들과 딸, 손자녀들과 함께 뮤지컬을 보러 온 그는 1937년 강제이주 2년 뒤인 1939년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났다. 자연스럽게 어릴 적 부모로부터 강제이주의 아픔과 시련, 극복과정을 듣고 자랐다. 부모와 자신의 이야기가 70여분 동안 전해지는 동안 내내 눈물흘렸다.

함께 관람하던 박상철 호남대학교 총장이 수차례 다독거렸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공연이 끝난 뒤 그는 함경도 사투리가 섞인 우리말로 “우리 고려사람 이야기들을 보여줘 감사하다. 조국이 우리를 잊지 않고 찾아와줘서 너무 고맙다”는 말을 전할만큼 깊은 감동을 안았다.
 

광주 고려인마을극단 ‘1937’과 호남대학교가 공동제작한 뮤지컬 ‘나는 고려인이다’가 2일 카자흐스탄 알마티 한국교육원에서 해외 첫 공연을 가졌다. 고려인의 시련과 극복의 역사를 음악과 무용, 노래로 표현한 작품은 현지 고려인 동포들에게 큰 감동을 안겼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문화예술인 재능기부로 작품 완성

이처럼 ‘나는 고려인이다’는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말로만 들었던 할아버지의 땅에서 먼 길을 달려와 자신과 조상의 삶을 전하면서 한민족의 동질성, 고려인의 정체성을 인식시켰다. 나라 잃은 국민으로서 남의 나라로 쫓겨와서도 우리 춤과 노래, 문화를 간직해온 고려인에게 자부심도 안겼다. ‘나는 고려인이다’ 출연진과 현지 출연진, 관객들이 손에 손을 잡고 ‘고려아리랑’을 부르면서 새 희망을 키우기도 했다.

‘나는 고려인이다’ 는 고려인이 광주 광산구 월곡동 일대에 집거지를 형성한 ‘지역성’과 유라시아 전역에 분포돼 있는 ‘아시아성’을 동시에 지닌 점을 착안해 광주의 대표적인 문화콘텐츠를 목표로 제작됐다. 2017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초연 이후 매년 4~5차례 국내 무대에 올랐다. 해외무대는 이번 중앙아시아 공연이 처음이었다.

고려인마을과 호남대는 올해 한국-카자흐스탄, 한국-키르기스스탄 수교 30주년을 맞아 우리 민족의 디아스포라(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에 담겨진 역사성 및 현재적 의미를 동포들과 교감하고자 2년여 준비를 거쳐 기념사절단을 구성해 중앙아시아 공연을 진행했다.

무엇보다 지역의 문화예술가와 대학의 힘으로 제작된 문화콘텐츠라는 점에서 주목받을만 했다. 문화예술인들이 자신의 재능을 십시일반 해 작품을 만들었다. 기획자 윤경미 고려인콘텐츠사업단장과 총연출을 맡은 최영화 호남대 미디어영상공연학과 교수를 비롯한 출연 배우, 스텝 등이 모두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다.

관객들에게 큰 주목을 받았던 ‘샌드 아트’ 영상은 주홍 작가의 재능기부가 있어 가능했다. 배우와 스텝들은 다른 작품을 포기하면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마음으로 봉사했다. 제작비용과 현지 공연비용은 고려인마을과 호남대에서 마련했다.
 

광주 광산구는 고려인 최초 정착지인 우슈토베 관할 행정기관인 카자흐스탄 제티스 주 카라탈 군과 우호교류협약을 체결했다./광산구 제공

◇중앙아시아 역사테마마을 조성 기반

기념사절단의 중앙아시아 방문에는 광산구와 호남대가 동행해 의미를 더했다.

광산구는 이돈국 부구청장과 김태완 광산구의회 의장, 공병철 광산구의회 경제복지위원장 등으로 구성된 우호·문화교류단이 함께했다. 광산구교류단은 카자흐 알마티, 우슈토베 등을 방문해 중앙아시아 역사테마 관광마을 조성을 위한 다양한 교류 활동을 진행했다.

고려인 최초 정착지 우슈토베에 소재한 제티수 주와 우호교류협정을 체결했다. 협정을 통해 양측은 고려인들이 반사막을 농경지로 바꾸고 벼농사 북방 한계선을 끌어올린 현장인 바슈토베 언덕과 고려인 초기 정착 기념지인 ‘한-카 우호공원’ 정비 사업 및 세계자연문화유산 등재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광산구 고려인마을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도 공동 추진키로 약속했다.

광산구가 운영 중인 월곡고려인문화관과 카자흐 공익재단 ‘디아스포라 유산’간에도 의미 있는 협약을 체결했다. 광산구는 이번 협약을 통해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지역 고려인동포들이 가지고 있는 자료와 유물을 기증받을 계획이다.

카자흐스탄 미술계의 거물이자 고려인 3세 화가인 문 빅토르 화백의 작품 수증의 성과를 얻었다. 문 화백은 고려인을 돌봐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광산구에 ‘형상’이라는 제목의 추상화를 기증하기로 했다.
 

호남대학교와 우즈베키스탄 대학간 교류협약식 모습./호남대 제공

◇대학, 지역문제 글로벌 이슈화

호남대는 박상철 총장이 공연단과 함께하며 중앙아시아 3스탄 국가(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에서 다양한 교육 교류 활동을 전개했다. 현지에서 8개 대학, 2개 정부기관, 문화행사 3회, 교류행사 3회, 국제심포지엄, 지자체 환담 등 총 18회의 이슈를 생성했다. 키르기스 정부 차원의 관심도가 높아 당초 계획보다 많은 일정을 소화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세계언어대학교와 타슈켄트 세무대학과 교류협정을 체결했다. 카자흐스탄 아바이 사범대학교와도 교류협약을 맺었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교육부 차관과 문화부 차관 등 정부 주요 인사들과 면담을 갖고 교육문화 교류 방안을 논의했다. 대통령 산하 대통령대학 총장, 국립아라바예바 대학 총장, 비쉬케크 국립 문화예술체육대학 총장 교류방안을 심도있게 협의했다.

카자흐스탄 국립도서관에서 한-중앙아시아 수교 3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하기도 했다. ‘백인의 식탁’을 타이틀로 한 국제심포지엄에는 박노자(오슬로대·러시아 출생), 이병조(카자흐국립대), 안소현(케네소주립대), 갈라노바 사유라(타슈켄트 부천대), 김영순(인하대) 등 국내외 고려인 학자와 전문가, 활동가들이 참여해 ‘디아스포라 한민족 공동체의 융성을 위한 방향성’을 모색했다.

또 실질적인 교육 교류를 위한 선도적 실천을 위해 카자흐스탄(카라탈 주)과 키르기스스탄 고려인 학생 총 5명을 특별장학생으로 선발, 지원을 약속했다.

호남대의 교류활동은 대학이 ‘고려인마을’로 상징되는 지역문제에 관심을 갖고 글로벌 이슈화하고, ‘주고 받기식’의 비즈니스 협약보다 콘텐츠개발, 인재양성 등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협약모델을 제시한 점에 주목받았다.
 

‘나는 고려인이다’ 중앙아시아 공연단이 현지 고려인단체와 ‘세계고려인단체총연합회’ 결성에 공감하며 ‘우리는 하나입니다’ 챌린지를 하는 모습./김명식 기자

◇고려인마을, 세계고려인사회 중심 추진

‘나는 고려인이다’ 공연과 광산구와 호남대 교류단의 중앙아시아 방문 활동은 우크라이나 난민 사태를 계기로 조명받고 있는 고려인과 광주 지역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광산구 월곡동의 고려인 집거지를 ‘글로벌 도시 광주’의 자양분으로 삼으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광주고려인마을이 추진 중인 세계고려인단체총연합회 결성이 대표적이다. 총연합회는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국가별로 운영되고 있는 고려인 관련 단체를 하나로 묶는 단체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아가는 고려인들의 연대를 통해 상호 협력·발전을 도모하고, 전쟁과 같은 위기 시 상호지원을 신속·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결성에 나섰다.

기념사절단은 중앙아시아 현지 고려인지도자와 총연합회 결성을 위한 챌린지를 갖고 상호 교류와 지원을 약속받았다. 고려인마을은 내년 4월까지 단체 결성을 마무리한 뒤 5월에 각국 고려인협회 광주 초청행사를 비롯해 사회, 경제, 문화, 예술 활동 교류와 각종 지원 사업을 순차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고려인단체총연합회가 출범하면 광주는 세계 각국 고려인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이는 고려인사회는 물론 국제사회에 광주의 위상을 높이면서 활동 무대도 세계로 더 확장시키는 효과도 기대된다.

따라서 기념사절단 공연과 교류단 활동은 문화예술인과 행정기관, 대학이 상호 협력해 광주의 위상이 대한민국을 넘어 유라시아까지 확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을만하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와 민주인권평화의 도시를 자부하는 광주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난민 대거 입국으로 고려인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높아진 상황에서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하고, 무엇을 해야하는 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

윤경미 고려인문화콘텐츠사업단장은 “광주와 국내에 들어온 고려인을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입국한 사람으로만 인식해서는 안 된다. 같은 한민족 동포인 고려인들과 힘을 모아 광주와 대한민국, 고려인 사회가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는 자산으로 삼아야 한다”며 “이번 방문의 성과와 활동 내용을 정확히 진단해 광주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카자흐스탄 알마티/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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