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 가면 먹고 살 수 있다’ 소문에 발길 이어져
하남·평동·소촌 산단 구직 가능
‘저렴한 가격’으로 거주지 마련도
고려인들 월곡2동서 공동체 생활
사회·경제적 네트워크로 자립 모색
모범적인 이주민‘사회적 자본’ 구축
취업·주거·의료·교육 등 기회 제공
지원조례 등 지역사회 관심·후원도
전쟁난민 진입 장벽 낮아져 ‘광주행’

 

고려인들의 광주 거주는 2007년 중국과 독립국가연합(CIS) 재외동포 대상으로 ‘방문취업제도’가 시행되고, 2010년을 경과하면서 본격화 된다. 사진은 광산구 월곡2동의 고려인마을 상가거리 모습. /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광주고려인마을이 우크라이나 탈출 고려인동포들에게 긴급구호품을 배분하는 모습./고려인마을 제공

중앙아시아에서 살던 고려인들이 광주에 처음 온 건 2000년 초로 추정된다. 광주고려인마을 연혁에 2000년 1월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해 일하던 우즈백출신 고려인 시나탈리야 씨의 1년치 체불임금 해결이 기록돼 있다.

고려인들의 광주 거주는 2007년 중국과 독립국가연합(CIS) 재외동포 대상으로 ‘방문취업제도’가 시행되고, 2010년을 경과하면서 본격화 된다. 광산구 자료에 의하면 광주로 이주한 고려인의 수는 2010년 413명, 2014년 1천134명, 2018년 4천659명, 2021년 7천여명(추정)이다. 이 가운데 5~6천명 가량이 광산구 월곡2동에 거주한다.

왜 고려인은 광주로 향하고, 월곡2동으로 모이는가?

광주거주 고려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광산구 월곡2동의 고려인종합지원센터 건물. 1층에는 어린이집, 2층은 상담실과 사무실, 3층에 고려방송국이 있다. /김명식 기자

◇경제적 어려움에 한국행 선택

고려인 이주 전문가들은 장소적 특성과 사회·경제적 네트워크에서 원인을 찾는다. 큰 공단은 아니지만 광주에는 하남산단, 평단산단, 소촌산단이 있다. 공단 입주기업은 1990년대 이른 3D 일자리 기피현상으로 인력난을 겪는다. 마침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경우 소련해체로 독립한 국가에서 배타적인 민족주의 운동이 확산되면서, 고려인은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고려인들은 먹고 살 길을 찾아 한국행을 택해 산단의 공장에 취업했다. 광주를 비롯 국내 다른 지역의 공장과 농촌 등에서 받는 임금 수준과 임금대비 물가를 고려할 경우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사는 것보다 대한민국에서 사는 게 생활비가 더 적게 들어간다고 생각해서다.

그 중 일부가 월곡2동으로 오면서 고려인마을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월곡2동은 광산구 소재 산단 배후 주택지로 오래전에 조성됐다. 1990년대 중반부터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주변에 들어서면서 이 주택단지는 빈집이 늘어나고, 집값과 임대료로도 다른 지역보다 저렴해졌다. 하남 산단 등에서 일하는 고려인들이 생활비를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이곳에 둥지를 튼 건 자연스러웠다.

고려인마을은 그 명칭에서 보듯 고려인들을 위한 사회·경제적 네트워크가 다른 지역보다 잘 구축됐다. 엄밀히 말해 고려인마을은 지명이 아니라 2014년 4월 법무부로부터 인가받은 비영리사단법인이다. 고려인 스스로 권익향상을 위해 결성한 사회단체다. 고려인들이 월곡2동에 모여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일대가 고려인마을이라고 불린다.

광주고려인마을 도움으로 우크라이나를 탈출해 인천공항에 도착한 한 고려인 모습. 전라도 광주 고려인마을 글씨와 태극기, 우크라이나기 그림이 인상적이다./고려인마을 제공

◇사단법인 결성해 다양한 지원

(사)고려인마을은 산하에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 고려인미디어센터, 고려인법률지원단, 바람개비꿈터 공립지역아동센터, 고려인역사박물관, 새날학교, 어린이집, 고려인진료센터 등 10여개의 공공시설(단체)을 운영중이다. 이 가운데 ‘광주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는 광주 고려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광주시 고려인 주민 지원 조례에 근거해 설립돼 고려인들의 안정적인 적응을 위한 다양한 지원활동을 전개한다. 통역, 의료, 취업, 산재, 비자갱신, 국적 취득, 주거, 출입국, 교육 등 고려인들이 겪는 문제를 한 곳에서 해결 할 수 있는 종합서비스를 제공한다.

우크라이나 전쟁난민을 위한 성금 모금과 항공권 제공, 난민 집값 보증금과 2개월 임대료, 먹을 것 등의 무상 제공도 지원센터를 통해 이뤄진다. 이렇듯 고려인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은데다, 사회·경제적인 네트워크가 뿌리내리면서 고려인들에게 광주는 생면부지의 땅이지만 결코 낯설지 않은 곳이 됐다. 서로 같은 말(러시아어)을 사용해 언어 소통에도 장벽이 없다.

이같은 고려인마을의 특성은 국내외 고려인 사회에 “광주에 가면 먹고 자고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고,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도 있다”는 소문을 퍼지게 했다. 광주가 경기도 안산이나 인천, 울산 처럼 공장과 일자리가 많지 않음에도 고려인들이 광주를 선호하는 배경이다.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앞다퉈 광주로 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17살 아들과 9살 딸을 데리고 우크라이나를 탈출해 광주에 온 김 알렌티나(37) 씨는 “우크라이나 고려인들 사이엔 광주에 가면 집과 일자리를 구할 수 있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다. 같은 말(러시아어)을 쓰는 사람들끼리 모여 살다보니 생활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고 알려져 있어 대부분 광주로 오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최근 광주시민 성금으로 구입한 항공권을 이용해 광주에 도착한 우크라이나 거주 고려인동포가 고려인마을이 마련한 쉼터에서 손을 흔들며 광주시민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 /김명식 기자

◇난민 정착 사회적 자본 두터워

전문가들은 고려인마을의 장소적 특성과 사회·경제적 네트워크 정착을 광주만이 갖고 있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으로 평가한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고려인이 살고 있는 곳은 경기도 안산시로 1만2천여명이다. 하지만 안산은 광주처럼 고려인 정착을 위한 사회적 자본이 형성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고려인마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국내에 입국한 고려인은 1천200명 정도다. 이 가운데 광주가 480여명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경기도 안산에 450명 가량이다. 특이한 건 광주 도착 난민들은 광주시민과 고려마을 주민 등의 성금으로 구입한 항공권을 이용해 입국하고, 안산은 기존에 거주하던 친인척의 도움을 받아 입국한 고려인이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난민이 된 고려인 동포들에게 온정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이 광주에 두텁게 형성돼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임영언 (사)재외한인학회장(조선대 교수)는 “고려인마을은 오랜기간에 걸쳐 자생단체를 결성·운영하면서 고려인 난민들의 입국은 물론 적응과 자립생활에 도움을 주고 있다. 전국적인 모델이 될 정도로 모범적이어서 고려인들이 다른 도시보다 광주 정착을 선호하고 있다”면서 “여기엔 이천영 목사,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 등 고려인마을 초기부터 헌신적으로 봉사한 활동가와 광주시민들의 공동체 정신, 광주시의 고려인지원조례 제정을 통한 행·재정 지원, 지역사회 각계각층의 관심과 후원 등이 뒷받침됐다”고 밝혔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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