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형(동신대 전기공학과 교수·에너지융합기술연구소장)

 

이순형 동신대 전기공학과 교수·에너지융합기술연구소장

지금 우리는 에너지 대전환과 디지털 전환이라는 두 거대한 흐름이 동시에 밀려오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흐름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산업과 경제, 그리고 지역의 구조까지 재편하는 힘을 갖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의 균형발전과 미래 100년을 좌우할 핵심은 바로 에너지와 디지털이 융합된 새로운 지역발전 모델의 수립이다.

그 중심에는 우리가 흔히 ‘호남’이라 부르는 광주·전남·전북이 있다. 호남은 단일 지역이 아니라, 각각 고유의 잠재력과 정체성을 지닌 세 개의 축이다. 이제는 광주·전남·전북이 각자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상호 연계와 융합을 통해 하나의 공동체적 산업권과 정책권으로 진화해야 한다.

광주는 이미 ‘AI 중심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생성형 AI, 인공지능 집적단지, AI 윤리 기반 정책 설계 등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래도시 모델로 성장할 수 있다. 전북은 지능형 로봇과 제조기술, 피지컬 AI(Physical AI) 기술을 중심으로 한 실물기반 융합 산업의 발전이 기대된다. 군산, 익산, 완주 등은 제조와 소재, 로봇 응용이 가능한 기반을 갖추고 있다.

전남은 데이터센터 유치,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통한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과 특수 전력용 반도체 산업을 활성화할 수 있는 최적의 지역이다. 이와 함께 한전, 전력거래소, 한국에너지공대, 동신대 등 에너지 핵심 기관이 모여 있는 나주 혁신도시는 세계적인 에너지 정책·기술 허브로 성장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신안과 해남, 영광 등 서남해안을 중심으로 한 조류발전과 해양에너지 개발까지 더해진다면, 대한민국 최첨단 에너지-디지털 융합지대로 거듭날 수 있다.

이러한 산업들은 반드시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운영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전력 수요를 지역 내부에서 창출하고, 지산지소형 에너지 전환을 유도해야 한다. 각 지역의 산업 클러스터와 연계하여 RE100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에너지를 자립하는 도시로 성장시키는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 에너지를 외부로 보내는 구조가 아니라, 내부에서 생산하고 활용하는 순환 구조를 통해 진정한 자립형 지역경제가 실현될 수 있다.

이제는 산업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주 여건 개선, 관광 자원 연계, 문화콘텐츠 융합 등 삶의 질까지 고려한 에너지-디지털 복합도시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 광주·전남·전북은 풍부한 자연, 역사, 음식, 예술 자산을 가진 지역이다. 지역민과 이주민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속가능한 도시 모델을 함께 그려야 한다.

이와 함께 세 지역 간 협력 행정 체계도 중요하다. 인프라 구축과 정책 집행에서 중복과 경쟁이 아닌, 분업과 연계가 가능하도록 광역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에너지 전환과 디지털 기반 산업은 공동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는 지방분권형 에너지 시스템 실현에도 긍정적 효과를 낼 것이다.

호남형 통합정책은 단순한 지역개발 계획이 아니다. 이는 국가전략 차원의 통합 비전이다. 첫째, RE100 기반 산업단지를 조성해 고부가가치 제조업과 첨단 ICT 산업을 집적화하고, 둘째, 데이터센터·AI 클러스터·스마트전력망 실증단지를 통합하여 전력과 정보가 동시에 흐르는 융합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셋째, 광주·전남·전북 지역의 대학, 연구기관, 특성화고 등이 참여하는 공동 인재양성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지역 청년이 머물고 싶고, 일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야 진정한 자립형 혁신이 가능하다. 넷째, 기후에너지환경부 등 핵심 정책 조직의 지역 유치를 통해 지방이 단순한 실험장이 아니라, 정책 기획의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주민들이 참여하고 수익을 공유하는 구조를 제도화함으로써, 정의로운 전환의 기반도 마련돼야 한다.

이러한 정책은 단지 호남을 위한 것이 아니다. 수도권 중심 체제를 탈피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다핵화된 균형형 국가모델로 재설계하는 시금석이다. 에너지, 디지털, 교육, 정주여건, 관광이 어우러진 호남형 국가모델은 전국의 지역들이 배워야 할 실천 모델이 될 수 있다.

광주·전남·전북은 각각 다른 색깔을 지녔지만, 함께일 때 더 큰 빛을 낸다. 에너지로 연결하고, 디지털로 묶고, 사람과 정책으로 실현해내는 새로운 100년의 설계도를 지금 이 자리에서 함께 그려야 한다. 이 글이 정책으로 이어지고, 지역 지식인과 주민들의 공감을 얻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지금이 바로 호남의 시간이다.

※외부 칼럼·기고·독자투고 내용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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