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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RE100은 더 이상 친환경 이미지 마케팅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전 세계 산업계는 재생에너지 기반의 전력 사용을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의 중심에 있는 대기업들은 협력사와 부품 납품 업체에게까지 RE100 이행 여부를 요구하고 있으며, 탄소중립을 둘러싼 무역 장벽은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이 흐름에 뒤처진 기업은 글로벌 경쟁에서 배제되며, 해당 지역 역시 산업 유치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지역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호남은 전국 최대의 재생에너지 생산지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산업적 경쟁력으로 충분히 연결해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RE100을 에너지 생산의 개념이 아닌 산업 기반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호남형 RE100 전략은 단지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산업구조 재편, 계통 안정화, 기술인재 양성, 주민참여, 제도 설계까지 아우르는 종합적 비전이 담겨야 한다.

첫째, 호남형 RE100 전략의 출발점은 산업 클러스터의 재구성이다. 기존 제조업을 고부가가치화하고 전력 다소비형 기업을 유치하면서 동시에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운영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춰야 한다. 특히 이차전지, 수소연료, AI 서버, 데이터센터, 반도체 공정 일부 등 RE100 수요산업을 선제적으로 유치해야 한다. 단순한 전력 공급지를 넘어 RE100 소비산업지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는 지역산업 생태계 전체의 구조를 바꾸는 중장기 전략이며 국가 에너지정책과 산업정책이 융합되어야 가능한 과제이다.

둘째, 전력계통 혁신이 병행되어야 한다. 단일 피더에 공동접속(병렬접속)만 구성해서는 향후 계속 늘어나는 산업단지의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ESS 대용량 병렬 접속, 분산형 전력망, 마이크로그리드, 수요반응 시스템(DR) 등 유연하고 지능화된 계통 설계가 필요하다. 특히 데이터센터와 같은 고효율 분산형 부하를 중심으로 계통을 계획하는 역설계 방식이 요구된다. 서남해안을 중심으로 22.9kV 단일 피더 공동접속 기준 100MW급 재생에너지 접속과 20MW급 ESS 병렬연계가 실현되면, 지역 내 RE100 수요를 상당 부분 자립할 수 있다. 이는 전국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계통 선진화의 모델이 될 수 있다.

셋째, 인재 양성 체계와 제도 정비가 핵심이다. 지역 대학과 특성화 고등학교에 RE100 관련 에너지-ICT 융합과정을 신설하고, 산업계 수요에 맞춘 실무 중심 교육과 인증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지역 인재가 지역 산업에 자연스럽게 정착할 수 있도록 ‘RE100 산학일체형 캠퍼스’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교육기관과 기업이 공동으로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현장 실습과 채용 연계를 포함한 통합형 프로그램을 설계해야 한다. 이를 통해 청년의 지역 정착률을 높이고 고급 기술인재를 지역에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

넷째, 주민과 지역사회가 주도하는 RE100 모델이 되어야 한다. 주민이 사업의 단순 수혜자가 아닌, 참여자이자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마을단위 전력 판매, 주민 출자형 ESS 운영, 수익 공유 시스템 등은 정의로운 전환의 핵심 기반이 된다. 단순한 동의와 보상의 수준을 넘어서, RE100 산업단지의 운영과 수익에 지역주민이 직접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수용성 제고뿐 아니라 지역 공동체 회복과도 연결된다.

마지막으로, 지방정부가 에너지 전환의 실질적 주체로 기능할 수 있도록 제도를 혁신해야 한다. 지방정부에 계통 설계, 산업 유치, 전력망 운영에 대한 일정 권한을 부여하고, 지역에너지공사 또는 에너지 자립센터를 통해 직접 기획과 운영을 주도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RE100 추진을 위한 지역계획 수립, 기업 협약 체결, 중앙정부와의 공동 투자 프레임이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RE100은 더 이상 목표가 아니다. 그것은 호남이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이자 미래 산업을 유치하기 위한 기본 인프라이다. 지금 이 길을 외면한다면, 호남은 다시 ‘전기를 보내는 지역’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지금 준비한다면, 호남은 ‘전력을 기반으로 산업을 품는 지역’이 될 수 있다. 바로 지금이 전략을 실행으로 전환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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